삼성이 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계열사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한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 합병하는 형식이지만 통합법인의 사명()은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와 창업 정신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으로 정했다. 제일모직-삼성SDI 합병, 삼성SDS와 제일모직 상장, 석유화학 및 방위산업 계열사 매각에 이어 삼성의 사업구조 재편이 실질적으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번 합병으로 삼성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전자 부문, 삼성생명을 축으로 하는 금융 부문, 건설 상사 패션 리조트 사업을 영위하는 삼성물산의 건설 및 서비스 부문 등 3각 편대로 재편된다. 제일모직은 작년 말 상장을 마친 뒤 글로벌 시장 확대를 추진 중이고 삼성물산은 해외사업 경험이 풍부하고 네트워크가 충실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삼성이 미래의 먹을거리로 관심을 쏟는 바이오산업 육성에 탄력이 붙을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지난해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사실상 3세대 경영을 시작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을 강화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 합병함으로써 이 부회장은 통합법인인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의 양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영향력을 키울 수 있게 됐다. 어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주가는 삼성의 경영 리더십 안정 기대감이 호재로 작용하면서 모두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이 부회장은 지난 1년 동안 사실상 회장 직무대행의 역할을 했다. 그는 이 회장이 맡았던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자리를 이달 15일 물려받아 31일 취임식을 갖는다. 다음달 1일 호암상 시상식에도 부친을 대신하는 자격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은 잇따른 해외 기업 인수와 삼성-한화 빅딜 등을 통해 자신의 경영 스타일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재용 삼성의 변화에 대해서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시하고 문어발식 사업구조에서 벗어난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하지만 단기 성과주의로 흐를 경우 미래 성장 분야에 투자하는 노력이 약해질 수 있다. 이재용의 삼성이 택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같은 사업구조 재편도 이 부회장의 경영권 강화를 넘어 삼성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성과를 거둘 때 의미가 있다.
한국의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그룹의 미래는 작게는 삼성 및 협력업체 임직원과 그 가족들, 크게는 한국경제의 부침()과도 연결된다. 이병철-이건희라는 걸출한 창업주 및 2세대 경영자의 뒤를 이어 3세 경영을 사실상 시작한 이재용 부회장의 책무는 무겁다. 그룹의 경쟁력 제고와 함께 삼성의 경영 투명성을 더 높여나가는 것도 이재용의 삼성이 안고 있는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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