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판용)민주당이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장외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김한길 대표는 31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서울광장에 국민운동본부를 설치하고 8월 1일 오전 10시 국민과 함께 하는 첫 의원총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된 정쟁 중단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증인으로 세우기 어려워지면서 지도력 부재 비판에 몰리자 택한 길이다.
장외 진지 구축
김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새누리당은 국정조사 기간 45일 중 세 번의 파행과 20여 일간의 조사 중단, 증인 채택 거부로 인해 더이상 국정조사에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며 민주당은 그동안 국정조사를 정상적으로 가동하기 위해 참을 만큼 참았지만 인내력은 바닥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사건의 진실규명과 국정원 개혁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 마당에 더는 참을 수 없게 됐다며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 국민운동본부 구성을 밝혔다. 본부장을 맡은 김 대표는 원내외 투쟁과 협상을 동시에 직접 이끌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천막을 치고 국민운동본부로 삼을 예정이다. 새누리당의 태도에 따라 당분간 이곳에서 장외투쟁을 이어가겠다는 뜻인 셈이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전면 장외투쟁을 하든, 원내외 병행투쟁을 하든 국회 밖으로 나가야 할 때라는 취지의 발언이 주를 이뤘다. 비공개 의총에서 이석현 의원은 국정조사 기한이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새누리당이 휴가를 가는 게 말이 되느냐며 국회를 보이콧하자. 판을 뒤집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목희 의원은 정부와 새누리당이 비합리적, 비상식적 행태를 계속하면 어쩔 수 있나. 국민에게 호소하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우상호 의원은 현재 (민주당이) 위기상황이라며 국정조사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강력한 장외투쟁을 동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박영선 의원은 문재인 죽이기가 이미 시작됐다. 모두 촛불에 합류해야 한다고 했고, 이학영 의원은 빨리 장외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설훈 의원은 지도부의 맹성()이 필요하다고 했고, 유승희 의원은 지도부의 결기를 보여 달라며 지도부를 질책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대화록 유출과 실종 문제는 특검을 통해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며 이와 관련된 검찰수사는 당연히 특검 시까지 일체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장외투쟁 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NLL 포기 발언 논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사태가 휘몰아친 지난 두 달여간 김 대표는 당 안팎의 대 정부여당 강경 대응 주장을 일축해 왔다. 정부여당과 부딪히는 일이 생길 때마다 장외로 나간다면 과거의 야당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때문에 김 대표는 최고위원회의 등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의혹을 파헤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 측도 장외 투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냐며 강경파 의원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히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원 전 국정원장과 김 전 서울경찰청장의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새누리당과의 협상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으면서 김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코너에 몰리기 시작했다. 당 안팎의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얻어내려 한 국정원 국정조사의 과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여기에 문재인 책임론 등을 놓고 불거지는 당내 갈등과 지도력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 때문에 전날 오후 원내대표단과의 회의에서 김 대표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마음먹은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이날 오전의 긴급 비상 의원총회는 사실상 장외투쟁에 들어서기 위해 명분을 얻기 위한 자리였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의 장외투쟁 결정에 당내에서는 장외투쟁을 할 것 같으면 진작에 했어야지라는 비판과, 장외투쟁은 새누리당 뜻대로 따라가는 꼴이라는 비판이 함께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장외투쟁 선언에 대해 민주당 스스로 국정조사를 포기하는 자폭행위로서 협상 아닌 협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 장외투쟁의 진짜 의도는 국정원 국조를 의도적으로 파행시키는 데 있다. 터무니없는 의혹을 확대 재생산해 대선불복의 정치공세 장으로 만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불리한 판을 뒤집어 버리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인 채택 합의 실패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권성동,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이날 오전 9시 반 국회에서 만나 증인채택 문제를 조율했지만 결국 합의에 실패했다.
당초 여야는 원 전 국정원장과 김 전 서울경찰청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방안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뒤 다른 증인을 채택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여직원 감금 의혹 사건에 연루된 민주당 김현 진선미 의원을, 민주당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권영세 주중대사와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을 증언대에 세우자고 각각 주장한 것. 정 의원은 결국 이날 오후 김 의원과 권 대사를 증인으로 채택하고, 원 전 원장이 국회에서 발언할 수 있도록 하라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민동용최창봉 기자 mindy@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