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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 만취 행패 부녀자 겁탈 무전취식

Posted March. 10, 2010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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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해방군을 자처하고 한반도 북쪽에 진주한 소련군이 1945년 8월 이후 5개월간 북한에서 보여준 행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건이 발견됐다. 1945년 12월 29일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가 소련군 진주 후 북한의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등 3개도를 방문조사한 뒤 만든 이 13쪽짜리 보고서는 당시 벌어졌던 수탈의 상황을 가감 없이 현장감 있게 전달하고 있다. 당시 이 보고서는 연해주 군관구 정치담당 부사령관 칼라시니코프 소련군 중장에게 보고됐고 그는 이 보고서를 이듬해 1월 11일 연해주군관구 군사회의위원인 스티코프 상장에게 전달했다. 러시아어 필사본인 이 문서는 미국의 외교안보전문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가 옛 소련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뒤 영어로 번역됐다.

소련군인이 직접 쓴 조선인 수탈보고서

우리 군인(소련군)의 비도덕적인 작태는 실로 끔찍한 수준이다. 사병, 장교 할 것 없이 매일 곳곳에서 약탈과 폭력을 일삼고 비행()을 자행하는 것은 (그렇게 해도) 별다른 처벌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페드로프 중좌는 당시 붉은 군대의 만행을 이같이 기술했다. 그는 우리 부대가 배치된 시나 군 어디서나 밤에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특히 비도덕적 행실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범죄도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대낮에도 거리에서 술에 취한 군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신의주 내 70군데 이상이 되는 여관과 공공건물에서는 밤마다 질펀한 술자리가 벌어졌다고 기록했다. 구체적인 사례도 적시됐다. 1945년 12월 6일 공병장교 막시모프는 휘하 병사 7명과 함께 한 여관에 투숙한 뒤 여자를 부르고 밤새도록 술판을 벌인 뒤 다음 날 아침에 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것. 더 기가 막힌 일은 막시모프 일행이 5일 후인 11일 또 이 여관에 들러 숙박비라며 돈을 냈는데 당시 북한에서 전혀 통용되지 않아 휴지조각으로 취급되는 만주돈이었다는 것이다.

또 한 조선인이 술로 곤죽이 된 소련군 중위를 끌고 갔던 사건의 기록도 있다. 이 조선인은 내 아내가 소련군에 겁탈당한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만행에 대한 처벌이 거의 없었다는 점. 소련군 스쿠트스키 중령이 사단 헌병대에 일벌백계()로 기강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묵살당했다고 보고서는 전하고 있다.

해방자를 자임한 비행

1945년 8월 26일 평양비행장에 도착한 소련극동군 연해주군관구 25군 사령관 치스차코프는 조선 인민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여러분 손안에 있다. 여러분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해방군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보고서에 따르면 치스차코프 사령관은 북한에서 소련군이 한 수탈과 관련해 봉기가 일어난다면 조선사람 절반을 교수형에 처하겠다는 극언을 했다고 한다. 여기에 부하들과 함께 1945년 11월 16일 해주 시내에서 무려 22시간이나 긴 파티를 벌이던 중 화재가 나는 바람에 집과 가산이 불타자 이를 불순한 세력의 방화로 가장해 30만 엔을 받아간 사실도 나온다. 이 밖에 258 소총사단장 드미트리예프 대좌는 사석에서 조선 사람들은 35년 동안 노예로 있었다. 좀 더 노예로 있어도 된다는 말도 남겼다고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하태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