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덧씌운 시멘트 해체여부 공론화 필요

Posted December. 02, 2009 08:39   

中文

1909년 4월 일제 통감부의 소네 아라스케((니,이)) 부통감 일행이 경북 경주시 토함산의 석굴암에서 본존불 무릎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석굴암 사진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당시 석굴암은 전실() 천장도 없이 비바람을 맞고 있었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일제는 1913년 석굴암의 전면 해체 보수공사에 나섰고 이후 석굴암의 존재는 널리 알려졌다.

사진을 통해 석굴암을 재발견한 지 100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불교중앙박물관에서는 석굴암 관련 사진 260여 점을 선보이는 석굴암 백년의 빛전이 1일 개막했다. 전시는 2010년 1월 말까지 열린다. 이를 계기로 석굴암을 둘러싼 현안을 살펴봤다.

전시회에 선보이는 사진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진은 일본의 도요켄() 사진관이 1912년 촬영한 본존불과 팔부신중(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을 촬영한 것들이다. 사진들은 일제가 1913년 보수공사에 착수하기 전 본존불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또 일본의 미술사학자 세키노 다다시()가 1909년 12월에 찍은 사진들도 돋보인다. 세키노는 석굴암에 대해 그 구조의 진기함과 조각의 정미함이 신라시대 최고라고 극찬했다. 이들 사진은 성낙주 석굴암미학연구소장이 일본에서 입수해 국내에 들여왔다. 이 밖에 196163년에 진행된 문화재관리국의 보수공사 사진에서는 돔 형태의 시멘트 구조물을 볼 수 있다. 일제가 바른 시멘트 때문에 습도와 온도 유지가 힘들어져 기존 시멘트 구조물에 약간의 간격을 두고 돔을 덧씌운 것이다.

시멘트 제거-관람객 통제 어떻게 해야 하나

1913년 일제는 본존불을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이유로 주실()과 전실의 지붕과 벽의 화강암 외부에 시멘트를 발랐다. 이 때문에 주실과 전실에 습기가 치고 시멘트를 거쳐 나온 이온을 함유한 물이 화강암을 침식시키는 문제를 일으켰다. 1961년에는 문화재관리국에서 습도와 온도 조절을 위해 그 위에 시멘트 돔을 덧씌웠다.

일제의 시멘트를 즉각 해체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신중한 입장이다. 김봉건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시멘트 해체는 기술적으로 어려워 보인다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강제적인 습도, 온도 조절을 유지하면 석굴암 보존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성낙주 석굴암미학연구소장은 주실 화강암과 시멘트가 완전히 붙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현 기술로 가능하다면 당장 뜯어내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강근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해체를 논의할 공식 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실 앞에 설치된 유리문도 논란거리. 도진영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관람객이 출입하며 발에 묻혀온 이물질이나 관람객이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화강암을 손상시킨다며 통풍을 위해 유리문을 해체하고 관람객을 통제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은 모조 석굴암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는 대중의 관람욕구도 만족시키고 석굴암 보존에도 도움이 되는 모조 석굴암을 다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1961년 석굴암 전실 앞에 설치한 목조 전각()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김리나 홍익대 명예교수는 전각도 석굴암의 통풍을 가로막는 요소라며 스님들이 예불을 드릴 수 있고 동시에 전실도 보호할 수 있는 대체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병선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