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나왔데요. 훤한 인물인데 왜 우는 얼굴로.
4일 서울 관악구 봉천11동의 재래시장인 원당시장. 지나가는 상인들이 생선 좌판을 하는 김성림(67) 할머니를 보고 한마디씩 인사를 건넸다.
김 할머니는 단골손님이 오려 줬다며 동아일보를 품안에서 꺼내 자랑했다. 전날 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당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1면에 실린 신문이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200여 m 늘어선 원당시장에서 할머니는 30년째 생선을 팔고 있다. 시장에서 단연 최고참이지만 할머니는 수천만 원의 보증금에 100만 원이 넘는 월세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아 아직 점포 한 칸 얻지 못하고 있다. 슈퍼마켓 한 귀퉁이의 리어카와 시장 바닥이 할머니의 노상 점포다. 겨울이면 칼바람을 맞는 난장 생활만 강산이 3번 바뀔 동안 한 셈이다.
설을 앞둔 이날 할머니의 좌판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손님들은 명절상에 올릴 동태포를 떠갈 뿐 갈치 삼치 가자미 등 다른 생선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전남 순천시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할머니는 17세에 이북 출신인 남편과 결혼하며 서울로 왔다.
할머니는 공사장을 전전하며 일하던 남편이 겨울엔 일거리가 없어 생선 장사를 시작했다며 그나마 15년 전에는 남편마저 떠나보내 시장이 유일한 밥줄이다고 말했다.
15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전 4시 반이면 일어나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사오는 할머니는 매일 오후 11시까지 시장 좌판을 지키고 있다.
혹시나 손님이 한 명이라도 더 올까봐 저녁은 좌판을 정리하고 집에 들어간 자정 무렵에야 겨우 한술 뜬다.
할머니는 겨울엔 일주일에 2, 3차례 수산시장에서 15만 원어치씩 생선을 사 오는데 하루에 5만 원어치도 못 판다며 여름철엔 아침에 사온 생선이 상해 밤에 고스란히 쓰레기봉투에 버리며 울 때도 많다고 했다.
이날도 할머니의 리어카 한 쪽에는 사흘째 팔리지 않아 내다버려야 할 삼치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생선 좌판으로 3남 1녀를 모두 시집 장가를 보냈다.
경기 나아져야죠라고 되뇌던 할머니는 가장 큰 바람은 손자와 손녀들이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환경미화원과 화물트럭 운전사, 공사장 노동일을 하고 있는 세 아들을 떠올리던 할머니는 나는 글씨도 못 읽고 아무것도 몰라요. 돈이 없어서 애들도 많이 못 가르쳤어. 손자들이 공부 잘해서 힘든 일 안 하는 게, 그게 제일 좋지요라고 덧붙였다.
할머니의 손자들은 지난해와 올해 공주교대와 강릉대에 각각 합격했다.
홍수영 gaea@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