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심 패권외교의 기본틀을 사실상 주무르고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러시아 외교의 막후 실력자인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 총리.
두 실력자가 911테러 이후의 국제질서 변화를 놓고 자존심을 건 치열한 지상() 논쟁을 벌였다.
라이스 보좌관이 미국 주도의 일방적인 세계질서를 옹호한 데 비해 프리마코프 전 총리는 다극화된 국제질서를 촉구해 첨예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이들이 격돌한 무대는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와 미국의 국제전문 격월간지 포린어페어스가 합동으로 발행하는 계간 외교전문지 국제관계에서의 러시아(Russia in Global affairs) 최신호. 다음달 발표될 이들의 기고문을 이즈베스티야가 미리 소개했다.
다극화 논리는 강대국간 경쟁만 부추길 뿐=라이스 보좌관은 다극화는 경쟁의 논리라는 제목의 글에서 현재의 단일한 국제질서는 강대국들의 통합 노력의 결과라며 옹호론을 폈다. 17세기 민족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뒤부터 계속돼온 강대국간의 반목과 갈등을 극복한 것이 미국 중심의 단일 질서라는 것.
그는 현 국제질서를 미국 유럽 등 자유를 옹호하는 민주지향 동맹이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악의 세력과 맞서고 있는 구도라고 개념화했다. 자유의 적에 맞서 공통의 이해와 가치를 가진 강대국들이 통합하는 것이 국지적 분쟁을 막는 첩경이라는 주장이다.
라이스 보좌관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의 말까지 인용하면서 (국제사회는) 자유 평화 정의를 지향하는 오직 하나의 극()으로 단일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극화 논리는 강대국끼리의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폄하하며 역사적으로 다극화된 국제질서가 세계평화를 가져다준 적이 없었다고 목청을 높였다.
일방적 국제질서는 세계평화 보장 못한다=반면 프리마코프 전 총리는 초강대국 없는 세계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 주도의 일방적인 국제질서가 세계에 안정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일방적인 행동이 이 지역에 안정을 가져오지 못했고 대테러 전쟁을 성공시키지도 못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는 것.
그는 911테러 이후 국제질서에는 두 가지 모델이 등장했다면서 유엔을 기반으로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위협에 대처하고 안정을 위해 노력하려는 흐름이 있었던 반면 일방적인 결정과 행동으로 유엔헌장뿐 아니라 다수 국가의 의견에 거스르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미국을 직접 겨냥했다.
또 다극화는 각 세력의 끊임없는 갈등을 의미하지 않으며 일방적인 국제질서가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하면서 냉전 이후 세계는 다극화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이 경제공동체에서 출발해 정치 군사적 통합까지 이루며 새로 힘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이 대표적 사례이며 앞으로 중국 러시아 등으로 힘이 분산되리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전 세계를 통제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국제사회 모델이라는 믿음이야말로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기현 kimkihy@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