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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장하는 클린턴

Posted November. 10, 2016 07:05   

Updated November. 10, 2016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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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을 꿈꿨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69)가 결국 유리천장을 깨는 데 실패했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민주당 경선부터 8년 동안 이어진 클린턴의 대권 도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오랜 꿈이 좌절됐지만 클린턴은 담담해 보였다. 개표가 진행 중이던 8일(현지 시간) 오후 클린턴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우리 캠프가 정말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늘 밤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난 모든 것에 감사하다”고 글을 올렸다. 개표가 끝난 일부 지역에서 패색 기미가 보일 무렵 올라온 소감이었다.

 이날 오전 8시 뉴욕 외곽 채퍼콰의 그래플린 스쿨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투표할 때는 “아주 겸허한 마음으로 투표에 임했다”고 말했다. 온 힘을 쏟아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는 것이다.

 그는 2008년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했을 때도 담담함을 잃지 않았다. 클린턴은 “우리가 가장 높고, 가장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지는 못했으나 천장엔 1800만 개(지지자 수)의 틈이 생겼다”며 스스로를 타일렀다. 이로부터 10년 전인 1998년 남편 클린턴 전 대통령의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남편 곁을 꿋꿋이 지켜 ‘차가운 여자’라는 평까지 나왔다.

 갖은 굴곡에 강인해진 클린턴이지만 이번 패배만큼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에게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란 꿈은 너무나 절실했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어릴 적부터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조부모 손에 자랐던 어머니 도러시 하월 로댐이 “여자도 능력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한 영향이 컸다. 클린턴은 미국 동부 명문 여대인 웰즐리대에 입학해 1968년 학생회장을 맡았고 이듬해 5월 웰즐리대 졸업식에서 역대 졸업생 중 처음으로 직접 연설에 나서 전국에 얼굴을 알렸다. 1971년 예일대 로스쿨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대통령 부인과 상원의원, 국무장관 등 화려한 정치 궤도를 달리기 한참 전부터 클린턴은 야망을 부단히 키워 왔다.

 일찍이 준비된 정치인이었던 클린턴이 허무하게 무너진 것은 e메일 스캔들로 증폭된 차갑고 위선적인 이미지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지 언론들은 유세 분위기를 보도하며 “유권자를 감동시키는 열정이 트럼프에겐 있지만 클린턴에겐 없다”고 꼬집은 바 있다. 트럼프는 TV토론과 유세를 통해 e메일 스캔들을 거론하면서 “클린턴을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