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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빵 사랑, 100년 전 광장시장에서 시작됐다

입력 | 2026-02-01 16:49:00


군산 ‘이성당’의 전신인 ‘이즈모야’ 화과자점 전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일제강점기인 1914년, 당시 경성의 광장시장(현 동대문 광장시장)에선 낯설지만 달콤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새로 문을 연 한 가게에서 ‘빵’이란 신문물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밀가루와 설탕, 기름 등을 섞어 다양한 빵과 과자를 만든 건 바로 ‘함성환(咸聖煥) 제과공장’. 최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염경화 조사연구과장이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조선인이 차린 최초의 빵집’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최근 한국인의 빵 사랑이 주목받고 있지만, 100여 년 전에도 경성 사람들의 빵 사랑도 각별했다. 1938년 기준 함성환 제과공장의 한 해 매출액은 18만5000원. 쌀 한 가마니가 18~2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쌀가마니 9250개를 살 수 있는 돈이다.

● 창씨개명에도 이름지킨 ‘함성환 제과공장’

기록상 우리나라에 세워진 가장 이른 시기의 빵집으로 확인되는 ‘강천과자점’ 광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염 조사연구과장에 따르면 사장 함성환 씨의 이름을 딴 조선인 첫 빵집 개업 소식은 조선총독부 식산국이 편찬한 ‘조선공장명부’에도 실린다. 당시 ‘왜떡’이라고도 불렸던 빵과 과자, 캐러멜, 껌, 물엿 등을 판매했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조선총독부의 창씨개명 압박이 거셌지만, 이 빵집은 광복 직전까지 ‘함성환 제과공장’ 또는 ‘함성환 상점’이란 명칭을 유지했다.

물론 한반도에 빵 문화가 유입된 건 이보다 한참 전인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박물관이 지난달 발간한 연구서 ‘한국의 제과제빵’에 따르면 당시 일본인을 통해 경성과 부산, 평양, 대구 등 도시를 중심으로 차츰 퍼져나갔다.

기록상 확인되는 가장 이른 시기의 빵집은 1895년 일본인이 차린 ‘강천과자포(江川菓子鋪)’. 지금의 서울 지하철4호선 명동역 근처에서 1943년경까지 영업하며 조선총독부 관저에도 빵과 과자를 납품했다.

SPC의 전신인 ‘상미당’ 전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일본인들은 주로 조선에서 서양식 빵과 과자를 일본식으로 변형한 ‘화양과자(和洋菓子)’를 만들어 팔았다. 서울 중구 남산동이나 필동, 명동 등에 해당하는 일본인 거류지 중심으로 화양과자점이 늘어났다. 부산에선 1896년 중구 대청동에서 슈크림 빵과 사쿠라모찌(桜餅·벚나무 잎을 감싼 화과자) 등을 파는 ‘야마토야 제과공장’이 문을 열었다. 조선인들은 이런 곳들을 ‘빵집’ 혹은 ‘팡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함한희 무형문화연구원장은 “오늘날 ‘한국식 빵’으로 불리는 꽈배기나 생도너츠, 상투과자 등은 일본식 빵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며 “1920년대까지 빵은 외래 음식이자 군것질거리로 여겨져, 서민에겐 부담되는 별식이었다”고 했다.

●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아침식사”

이성당 인스타그램

조선인이 빵 등을 즐기는 문화가 퍼진 건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다. 1927년 동아일보엔 식빵 보존법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식민지 조선의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아침 식사로 식빵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며 “조선인들은 일본 군납용 빵을 만들면서 제빵 기술을 익혔다”고 설명했다.

광복 뒤엔 일본인이 적산가옥(敵産家屋)에서 운영하던 빵집들을 한국인이 인수하기도 했다. 80년 역사의 빵집 노포로 잘 알려진 군산 이성당, 서울 태극당 등이 대표적이다. 이성당은 1910년대 ‘이즈모야 화과자점’을 1945년 고 이석우 씨가 인수했다. 태극당은 같은 해 고 신창근 씨가 제과점 ‘미도리야’를 넘겨받았다.

1940년대엔 제빵산업이 크게 위축됐다. 함성환 제과공장에 대한 기록도 1943년 이후 사라졌다. 염경화 과장은 “전시 체제로 물자와 식량이 통제되며 빵집도 급격히 위축됐다”며 “1943년 전국 빵집은 1940년(230여 곳) 4분의1 수준인 57곳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빵집이 본격적으로 대중화한 시기는 1960년대 이후라는 의견이 많다. 함한희 원장은 “정부가 분식 장려 정책을 펼치고 국민 생활 수준도 높아지며 소비가 늘어났다”며 “도시에서 누리는 현대적 문화 공간이자 만남의 장소로 여겨지며, 빵이 주식인 유럽·미국과 다른 ‘빵집 문화’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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