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이성당’의 전신인 ‘이즈모야’ 화과자점 전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최근 한국인의 빵 사랑이 주목받고 있지만, 100여 년 전에도 경성 사람들의 빵 사랑도 각별했다. 1938년 기준 함성환 제과공장의 한 해 매출액은 18만5000원. 쌀 한 가마니가 18~2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쌀가마니 9250개를 살 수 있는 돈이다.
● 창씨개명에도 이름지킨 ‘함성환 제과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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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상 우리나라에 세워진 가장 이른 시기의 빵집으로 확인되는 ‘강천과자점’ 광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물론 한반도에 빵 문화가 유입된 건 이보다 한참 전인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박물관이 지난달 발간한 연구서 ‘한국의 제과제빵’에 따르면 당시 일본인을 통해 경성과 부산, 평양, 대구 등 도시를 중심으로 차츰 퍼져나갔다.
기록상 확인되는 가장 이른 시기의 빵집은 1895년 일본인이 차린 ‘강천과자포(江川菓子鋪)’. 지금의 서울 지하철4호선 명동역 근처에서 1943년경까지 영업하며 조선총독부 관저에도 빵과 과자를 납품했다.
SPC의 전신인 ‘상미당’ 전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함한희 무형문화연구원장은 “오늘날 ‘한국식 빵’으로 불리는 꽈배기나 생도너츠, 상투과자 등은 일본식 빵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며 “1920년대까지 빵은 외래 음식이자 군것질거리로 여겨져, 서민에겐 부담되는 별식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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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당 인스타그램
광복 뒤엔 일본인이 적산가옥(敵産家屋)에서 운영하던 빵집들을 한국인이 인수하기도 했다. 80년 역사의 빵집 노포로 잘 알려진 군산 이성당, 서울 태극당 등이 대표적이다. 이성당은 1910년대 ‘이즈모야 화과자점’을 1945년 고 이석우 씨가 인수했다. 태극당은 같은 해 고 신창근 씨가 제과점 ‘미도리야’를 넘겨받았다.
1940년대엔 제빵산업이 크게 위축됐다. 함성환 제과공장에 대한 기록도 1943년 이후 사라졌다. 염경화 과장은 “전시 체제로 물자와 식량이 통제되며 빵집도 급격히 위축됐다”며 “1943년 전국 빵집은 1940년(230여 곳) 4분의1 수준인 57곳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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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