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서울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왼쪽)가 건강을 회복한 X 염색체 저인산혈증(XLH) 환자(가운데)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교수는 “7000여 개의 희귀질환 중 실제 치료제가 있는 질환은 5% 정도에 불과하다”며 “이마저도 비용 때문에 환자가 이용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기자가 만난 희귀·난치성질환 환자와 그 가족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의학의 발전으로 과거에는 치료할 수 없었던 병을 고치는 ‘기적의 신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환자들은 비싼 약값의 장벽 앞에 좌절하고 있다.
최근 기자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X 염색체 저인산혈증(XLH)’을 앓고 있는 29세 여성 김모 씨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지난해 희귀질환 환자를 대표해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초청 행사에 참석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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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수가 워낙 적다 보니 이들의 목소리는 늘 보건의료 정책의 변두리에 머물렀다. 과거의 치료법은 그야말로 원시적이었다. 부족한 인산과 칼슘을 보충하기 위해 하루에 무려 20알이 넘는 알약을 복용하는 대증(對症)요법이 전부였다. 질병의 근본 원인은 두고 증상만 다스리는 방법이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장기간의 약물 복용이 신장을 망가뜨리고 생체 에너지를 떨어뜨리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김 씨 역시 어릴 때부터 대증요법에 의존했다. 그러다 대학 입학 무렵 뼈가 약해지고 전신에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그녀는 결국 4년 가까이 침대에서 단 한 발짝도 일어나지 못한 채 누워만 지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고, 고통을 끝내기 위해 차라리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4년 전 일본에서 XLH의 원인 물질을 차단해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상상을 초월하는 약값이 발목을 잡았다. 한 달 주사 비용만 무려 1000만 원에 달했다. 자식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부모는 살던 집을 처분했다. 신약 주사 치료를 받은 지 3개월 만에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스스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현대 의학의 기적이었다.
문제는 이 주사를 평생 한 달에 한 번씩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매년 1억2000만 원이라는 거액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정 이상의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을 면제해 주는 ‘본인부담상한제’가 있지만, 이 역시 비급여 신약 앞에서는 무용지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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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극은 비단 희귀질환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자가 이달 초에 만난 소세포폐암 환자 김모 씨의 사연도 비슷하다. 김 씨는 한 차례 완치 판정을 받았던 폐암이 재발해 온몸으로 전이되면서 위독한 상태를 맞았다. 그러다 암세포를 정밀 타격하는 신약 ‘탈라타맙’을 투여받으면서 기적적으로 암세포가 사라졌고, 이제 매일 아침 가벼운 산책을 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나 김 씨와 그 가족들에게도 이 약은 곧 절망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항암제 비용이 월 2700만 원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딸이 겨우 돈을 빌려 간신히 항암제 비용을 대고 있지만,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통장 잔액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약을 끊으면 암세포가 다시 증식할 것이 뻔한데, 돈이 없어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심정은 피가 마른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돈과 생명 사이에서 처절한 싸움을 벌이는 환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과 보건당국 일각에서는 ‘탈모약 급여화’나 ‘비만치료제 급여 확대’ 같은 포퓰리즘 공약과 정책들이 논란이 되고 있다.
물론 삶의 질을 높이는 치료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의 재정이 허락할 때 논의할 수 있는 영역이다. 경증 질환이나 미용성 질환에 대한 급여 지출을 과감히 줄이고, 고가이더라도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무겁고 중한 난치성 질환에 건강보험 급여를 최우선으로 적용하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다. 더 이상 돈 때문에 생명을 포기하는 비극이 반복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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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