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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현지]앤스로픽 ‘페이블5’ 사태가 일깨워 준 세 가지

입력 | 2026-06-23 23:09:00

김현지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미국 인공지능(AI) 회사 앤스로픽의 최신 모델 ‘페이블5(Fable5)’가 시장에 출시됐다가 3일 만에 사용 중지됐다. ‘페이블’이라는 이름은 라틴어 ‘파불라(fabula·이야기)’에서 따온 것인데, “성능이 너무 뛰어나 위험하다”며 일부에게만 공개된 ‘미토스(Mythos)’의 대중 버전으로 큰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떠들썩하게 퇴장해 그야말로 전 세계적 이야깃거리가 됐다.

페이블5가 갑작스레 중단된 것은 미국 정부의 서한 한 장 때문이었다. “외국 세력, 특히 중국과 연계된 단체가 페이블5로부터 민감한 정보를 탈취할 수 있다”며 외국인 접근 제한을 요구한 것이다. 자사의 외국 국적 직원까지 제외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앤스로픽은 결국 서비스 중지 결정을 내리게 됐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하룻밤 사이에 최첨단 AI 접근을 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목격한 동맹국들은 이를 AI 주권(AI sovereignty)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에두아르 필리프 전 프랑스 총리는 “타인이 통제하는 기반 시설은 언제든 연결이 끊길 수 있다는 교훈을 줬다”고 논평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럽이 기술 주권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로 꼽았다.

각국 정상이 진단한 대로, AI 모델이 행정·국방·교육·금융·제조의 핵심 인프라가 되어가고 있는데 우리가 접속을 허가받는 방식으로만 그것을 쓸 수 있다면 심각한 문제다. 이 경우 누가 AI의 위험을 정의하는가, 누가 사용 제한을 거는가, 누가 접근권을 부여하는가가 곧 권력이 된다.

‘첨단 기술의 전략 자산화’를 여러 번 목도해 온 우리에게 사실 페이블5 사태는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2019년 미국이 화웨이를 수출 제한 기업 목록에 올렸을 때 TSMC 등이 일제히 화웨이와 거래를 끊었고 동맹국 기업도 예외 없이 미국 규정을 따라야 했다. 다만 화웨이 제재 때 우리는 제재에 ‘동참하도록 압박받는’ 입장이었다면 이번에는 우리 역시 접근이 차단되는 ‘직접적 제재 대상’이 됐다는 점이 다르다.

페이블5 사태가 우리에게 일깨워준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타국 AI를 클라우드 API 형태로 끌어다 쓰는 식의 의존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는 점이다. 각종 AI 서비스의 근간으로 쓰는 모델의 사용이 갑자기 중지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방·공공·보안·산업 특화 영역에서 독자 모델과 독자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두 번째로 특정 국가나 기업의 모델에 대한 쏠림을 줄이고 여러 모델을 함께 쓰는 구조를 설계, 운영하는 역량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미국 국방부는 특정 AI 기업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여러 회사의 모델을 업무 유형에 따라 나눠 쓰는 멀티모델 전략을 쓴다고 한다. 한국은 기업 쏠림뿐 아니라 국가 쏠림까지 함께 해소해야 하는 만큼 더 정교한 분산 전략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AI 생태계에서 주요국이 우리와의 관계를 쉽게 끊을 수 없도록 필수 파트너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페이블5 사태는 단순한 서비스 중단이 아니다. 누가 AI 접근권을 좌지우지하는가를 세계가 처음으로 목격한 사건이었다. AI 생태계에서 우리는 접근권을 부여하는 쪽에 설 것인가, 부여받는 쪽에 설 것인가? 다음 페이블 사태가 오기 전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김현지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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