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사진 No. 168
선관위의 이해할 수 없는 선거 관리 행태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6·3 지방선거 당일과 그 이전 선관위의 비상식적인 운영에 대한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선거 다음 날 새벽부터 이어진 집회가 벌써 열흘째입니다. 대학 캠퍼스에서도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는데, 사진으로는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는 느낌입니다. 그냥 흐지부지 사라질 목소리일까요, 아니면 사진이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걸까요.
핸드볼경기장 매표소에 걸린 재선거촉구 피켓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며 개표소 봉쇄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인근 매표소에 재선거를 촉구하는 피켓들이 붙어 있다. 뉴시스
수백 명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현장은 대체로 비슷한 사진으로 표현됩니다. 지도부가 연단에 서서 구호를 외치면 군중이 주먹을 들어 따라 외치고, 카메라는 그 절정을 찍습니다. 대규모 집회의 에너지를 한 장으로 압축하는 방식입니다. 화려하고 강렬할수록 신문 지면과 인터넷 메인 화면에 픽(pick)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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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소개한 적 있지만, 동아일보 데이터베이스에서 한쪽 팔을 들어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74년입니다.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규탄집회와 김일성 규탄 및 일본 각성 촉구 국민총궐기대회가 그해 8월 27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렸습니다. 1950, 60년대는 손으로 쓴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어깨동무를 하고 스크럼을 짠 채 행진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마지막 공식 유세를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사진을 보는 우리도 이런 화려함에 익숙해져 있을지 모릅니다. 이 정도 규모와 완결성을 갖춰야 관심을 가질 만한 목소리라는 인식 같은 것입니다.
● 서부지법이 바꿔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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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는 그것을 봤습니다. 카메라가 무엇을 포착하는지, 그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참정권이 침해됐다며 올림픽공원 개표소 앞에 모인 청년들이 들고 나온 손팻말에서도 비슷한 결을 느꼈습니다. 과장 없이 각자의 언어로, 찍혀도 괜찮은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합니다. 큰 무대도 밝은 조명도 주먹을 든 군중도 없습니다. 행사를 기획하고 주도하는 세력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거기서 나오는 사진은, 80년대식 문법으로 보면 약한 사진입니다.
● 사진이 놓치고 있는 마음
6월 10일 전국 18개 대학 총학생회가 공동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학교별로 몇 명씩 모이는 형식이라 대표성을 가진 한 장의 이미지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규모에 익숙한 뉴스 제작자들에게는 크게 어필하지 못하는 형식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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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총학생회 투표용지 부족 시국선언/ 10일 광주 북구 전남대 5.18광장에서 윤동규 전남대 총학생회장 이 6·3 지방선거 당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전국적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skyblue@donga.com
그런데 최근 그 자리에 성조기와 부정선거 구호가 함께 등장하면서, 현장의 풍경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화면에 담기는 모습도 달라졌고, 손팻말은 그 안에서 점점 보이지 않게 됐습니다.
그 분노가 사라진 것일까요, 화면 안에서만 사라진 것일까요.
송파구 개표소 앞 손팻말 사진은 처음부터 약했습니다. 기획도 없고 연출도 없었습니다. 한 학생은 시국선언에서 말했습니다. “너무도 당연해서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던 약속이 깨진 것에 대해 말하려고 나왔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절차가 깨진 것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손으로 써서 표현한 그 목소리는, 집회 경험이 많은 지도부가 사전에 인쇄물과 정교한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행사장의 목소리에 비해 과연 작은 것일까요. 어쩌면 더 큰 변화의 조짐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좋은 댓글로 고견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