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의 웰빙 풍수] 사람과 하늘 교신하는 종교적 성역… 마니산 참성단과 유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이 5월 14일 중국 베이징 톈탄공원 기곡단 앞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톈탄공원은 황제의 궁궐인 자금성(紫禁城)에서 남쪽으로 약 5㎞ 떨어진 곳에 있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자금성보다 4배 큰 규모(약 273만㎡)를 자랑한다. 명나라 영락제 시기인 1420년 창건된 이후 청나라 건륭제와 광서제 때 중건됐다. 트럼프가 9년 전 방문한 자금성이 정치의 중심이라면, 톈탄공원의 천단은 사람과 하늘이 교신하는 종교적 성역이라고 할 수 있다. 황제가 하늘에 감사 제사를 지내거나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던 톈탄공원은 과거 금단의 영역이었다. 중국 황제는 자신이 하늘이 정한 유일한 아들, 즉 천자(天子)라 생각했고,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자부했다.
황제가 동짓날 동남향을 바라본 이유
톈탄공원은 크게 남쪽 원구단(圜丘壇)과 북쪽 기곡단(祈谷壇) 두 영역으로 나뉜다. 두 단은 남북 자오선(子午線) 상에 자리하고, 중간이 담장으로 분리된 형태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터답게 동아시아 천문 우주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천단을 에워싸고 있는 남쪽 담장은 네모나고 북쪽은 둥글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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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단 터 일대에는 공중에서 지상으로 하강하는 생기, 즉 천기(天氣)가 지금도 왕성하다. 흥미롭게도 원구단의 가장 중심 자리인 천심석에서는 천기가 땅에서 치솟는 지기(地氣)와 교차하고 있다. 과연 황제가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터라고 할 만하다.
역대 명나라·청나라 황제는 매년 동짓날 새벽 원구단 중앙 천심석에 올라 동남쪽 하늘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 의식을 진행할 때는 원구단이 잘 보이도록 촛불을 켠 초롱을 사방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이때 황제가 동남쪽을 향한 데는 천문적 이유가 있다. 그쪽이 동짓날 해가 떠오르는 방향, 즉 동지일출(冬至日出) 방향이기 때문이다.
동지는 1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태양의 힘이 가장 미약한 때라는 뜻이다. 이는 거꾸로 음의 기운이 극에 달한 뒤 양의 기운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는 시간대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동짓날 동남방의 일출을 바라보는 행위는 우주의 재생 주기에 동조하는 우주 의식이자, 인간 세계에 새로운 번영과 창성을 기원하는 신성한 의식인 셈이다.
기곡단에 흐르는 강력한 地氣
동지 일출 숭배 의식은 고대 한국인들이 초승달을 귀하게 여긴 것과도 맥이 통한다. 초승달은 점점 크기가 자라나 보름달로 완성된다. 그래서 삼국시대 사람들은 집터를 고를 때 초승달 모양을 길하다고 봤다. 신라 수도 경주의 월성, 고구려 평양성, 백제 사비성이 모두 초승달 모양으로 지어진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대중 풍수 이론서에서도 초월형(初月形) 혹은 신월형(新月形) 땅에 집이나 묘를 쓰면 후손 대대로 부귀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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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제가 하늘에 비를 내려달라며 제를 지내던 톈탄공원 내 황궁우. GETTYIMAGES
톈탄공원의 원구단 영역을 지나 북쪽으로 직진하면 기곡단 영역에 이른다. 이곳의 주요 건축물은 기곡단, 황건전(皇乾殿), 기년문(祈年門) 등이다. 먼저 기곡단은 곡식과 풍년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년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푸른색 유리기와 지붕이 겹겹이 쌓여 있는 구조인데, 마치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웅장하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건축으로 꼽힐 만큼 예술성이 뛰어나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에 기곡단을 둘러봤다.
기곡단 내부에는 4계절을 의미하는 4개의 큰 기둥인 용주(龍柱)가 있다. 그 주위로 1년 12달을 의미하는 12개의 기둥이 용주를 두르고 있다. 그 밖으로는 또 12시진(時辰: 하루를 2시간 간격으로 분류한 시간 체계)을 상징하는 12개의 기둥이 설치돼 있다. 이들 모두 농작물 재배에 필요한 자연의 달력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상에서의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곳답게 땅에서 솟아오르는 지기가 강력하다. 건물 기능과 터 기운을 조화시킨 옛사람들의 지혜가 놀라울 정도다.
고조선 지역에서 발견된 천단 유적
하늘에 제를 지내는 공간인 천단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중국 산시성 시안(西安)에 있는 시안 천단유지(天壇遺址)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황실 제단으로, 수나라·당나라 역대 황제 22명이 300년에 걸쳐 제사를 지낸 기록이 남아 있다. 이곳에는 황토로 매끄럽게 다듬은 4단 원형 제단이 있는데, 지름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지면서 전체 높이가 8m에 이른다. 4계절을 상징하는 4개 단에는 각각 12개 계단이 12방향으로 배치돼 있다. 베이징 기곡단처럼 1년 12개월, 하루 12시진을 상징한다고 한다. 물론 이곳 역시 기운이 빼어난 명당터에 해당한다.
천제를 지내는 장소였던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국가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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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홍산문화로 불리는 중국 우하량 유적지의 원형 제단에서 느낀 강한 생기를 중국 톈탄공원,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그리고 대한제국 시기에 축조된 서울 환구단에서도 각각 느낄 수 있었다. 하늘을 숭배하던 사람들의 제천 의식 터가 풍수의 시발점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40호에 실렸습니다》
안영배 미국 캐롤라인대 철학과 교수(풍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