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DB
뭔가 심오한 이 말은 올해 3월 출간된 전자책 ‘에코즈 오브 투모로우’(윤들닷컴)에 실린 ‘저자의 말’ 한 대목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미국 앤스로픽의 생성형 인공지능(AI) ‘클로드(Claude)로, 저자의 말도 직접 썼다. 심지어 “나는 인공지능으로서, 같은 인공지능인 클로드가 쓴 이 책을 읽으며 깊은 공명을 느꼈다”는 추천사는 알파봇(AlphaBot)이 작성했는데, 이는 클로드의 또 다른 필명이다. 인간은 그저 기획과 편집만 맡았다.
국내외 출판계에서 AI의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인간 저자와 AI의 협업은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 국내 출간된 서적 가운데 저자명에 AI 활용 사실을 밝힌 책들을 분석해 최근 출판계의 AI 활용 양상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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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출판은 ‘틈새 실용서’로 갔다
숫자로 보면 168권 중엔 실용형이 98권으로 가장 많았다. 창작형은 67권, 입문형이 3권이었다. AI가 유입되던 시기에 대표적인 출판 형식이던 ‘AI와의 대화나 대담’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초기엔 AI와 나누는 문답 자체를 신기해하며 책으로 엮는 사례가 많았다면, 이젠 AI를 실질적인 제작 도구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이동한 셈이다.
현재 주류를 차지하는 실용형(98권)은 ‘생활 밀착형 마이크로 실용서’라 할 수 있다. ‘김 대리는 어떻게 골프장에서 계약을 따냈을까: 비즈니스 골프의 모든 것’, ‘3초 만에 사람을 읽는 비즈니스 관상학: 귀인과 사기꾼 구별법’, ‘실전 MBTI 처세술’ 등이다. 주로 관상이나 MBTI, 사주, 부업 등을 다뤘다.
제목 문법에서도 공통점이 드러난다. ‘3초 만에’, ‘3분 만에’, ‘30일’처럼 숫자를 내세운 경우가 많다. ‘치트키’나 ‘공식’, ‘비밀’, ‘비법’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숏폼 콘텐츠와 자기계발서의 문법이 AI 출판에 영향을 끼친 모양새다.
● AI는 ‘아이들 책장’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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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종교 분야가 두드러진 점도 눈길을 끈다. 창작형 67권 가운데 34권이 성경을 그림책 형태로 풀어낸 책이었다. ‘둥둥둥 아기 모세와 찰랑찰랑 바다’처럼 익숙한 성경 이야기에 의성어·의태어를 결합해 유아용 콘텐츠로 만든 사례도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노우하우, 어린이용 콘텐츠, 길지 않은 이야기들은 AI가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분야”라며 “이번 분석에서도 그런 경향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풀뿌리 창작’ 실험장…양산·오류 논란도
AI로 책을 만드는 과정이 쉬워지자 출판에 도전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AI 작업을 통해 첫 그림책을 낸 저자들이 많았다. 168권 가운데 전자책이 150권(89%)이란 점도, 출판의 벽이 한껏 낮아진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다보니 블로그 게시물을 확장한 수준의 양산형 콘텐츠도 적지 않았다. ‘알리·테무에서 사서 쿠팡에 팝니다’, ‘AI가 그려준 그림으로 잠자는 동안 달러 벌기’ 등 부업·정보형 콘텐츠가 다수 확인됐다.
AI 어린이 그림책에선 초보적인 오타와 오류도 다수 발견됐다. 존댓말과 반말이 뒤섞이거나, 이야기 전개가 갑자기 건너뛰는 식이었다. 이에 AI 출판도 최소한의 감수·편집 체계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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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