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청소년기는 부모가 제공한 기성복에서 벗어나 나만의 옷을 짓는 법을 익히는 시기입니다. 어른이 되었어도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기를 주저한다면 독립보다는 의존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중고교 6년을 교복 입고 지내다가 대학 입학 후 부모님이 맞춰주신 양복은 맞춤복이었지만, 내 힘으로 마련한 옷은 아니었습니다. 반평생 동안 입었던 의사 가운 역시 이름이 새겨져 있었어도 소속을 확인하는 옷이었습니다.
기성복은 일정한 기준 치수에 따라 미리 대량생산됩니다. 시간과 돈을 더 써야 하는 맞춤복과 달리 대개는 저비용으로 바로 사서 입습니다. 나만의 옷을 입을 때 느끼는 다른 사람들과의 심리적 거리감도 해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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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초기에 분석가는 묻습니다. “당신의 삶은 어떠합니까?” 근원적인 물음에 피분석자는 답합니다. 증상은 개인 삶의 과정에서 생겨난 갈등의 부산물일 뿐입니다. 억지로 입고 살아온 기성복으로 인해 갈등과 고통이 생겼으니 단추 몇 개를 바꿔 달기보다는 옷 자체를 맞춤복으로 바꿔 입어야 근본적으로 해결이 됩니다.
조건부 사랑에 시달렸던 피분석자는 부모가 입혀준 옷이 어울리지 않아도 관계 단절이 겁나서 벗을 수 없었을 겁니다. 완벽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면 좋아해도 부모가 싫어할 옷을 감히 입을 수 없었을 겁니다. 비슷하게 보이는 우울, 불안 상태도 개개인의 기질과 성장 경험, 적응 방식에 따라 분석이 각각 달라집니다. 체형이 각각 다른 사람의 맞춤복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은 맞지 않는 기성복에 몸을 욱여넣는 것처럼 세상의 기준에 따라 살면서 상처를 받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 기준, ‘바람직한 삶’에 맞추다 보면 마음이 병듭니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고 자책하며 자신에게 상처를 줍니다. 내 마음은 기성복이 아니고 맞춤복이니 남의 마음과 비교할 대상이 아닙니다. 규격에 맞춰진 기성복이 아무리 멋있어도, 억지로 입고 자기 자신을 위안한다고 해서 치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정신분석은 세상이 나에게 입기를 요구하는 기성복이 왜 어떻게 맞지 않는지를 직면하도록 돕습니다. 겉보기에 완벽해도 나를 조여오는 불편한 옷임을 인정하는 솔직함도 필요합니다.
정신분석 이론은 분석 과정에서 사용 가능한 ‘디자인 패턴’이자 ‘바느질 도구’입니다. 그러나 패턴과 도구가 맞춤복의 품질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이론적 잣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그럴듯한 기성복이 만들어질 뿐입니다. 미리 만든 옷에 사람의 몸을 맞추려는 것과 같습니다. 분석은 두 사람이 함께 실과 바늘을 들고 진정한 소망의 조각들을 연결해 맞춤복을 제작하는 과정입니다. 연상, 기억, 꿈을 모아서 고유한 패턴을 파악하고 해석하면 피분석자는 자신이 어떤 삶의 패턴에 어떻게 잘못 갇혀 있었는지를 깨닫습니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맞춤복은 화려하거나 유행을 따르는 옷이 아닙니다. 남들이 보기에 투박하거나 단조로워도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내게 어울리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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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