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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성민]‘목숨을 살리는 정부’… 시작은 지방정부부터

입력 | 2026-05-18 23:03:00

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지난해 국민 1만3774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아직 잠정치이지만 정부는 전년(1만4872명) 대비 7%가량 자살 사망자가 줄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등 관련 부처에 따르면 올 2월까지도 감소세가 이어지는 추세라고 한다.

자살이 줄어든 이유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우선 자살 사망자가 급증했던 2024년의 기저효과다. 유명인의 자살 후 자살률이 치솟는 ‘베르테르 효과’와 팬데믹 후 정서적 소진이 겹치면서 2024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9.1명으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이런 위기 요인이 사라지자 다시 2023년(1만3978명) 수준으로 돌아갔을 뿐 안도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주식 시장 호황과 정부의 빚 부담 완화 정책이 자살률을 낮췄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장기 소액 연체자 채무 탕감과 불법 채권 추심을 막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40대 등 ‘허리 세대’가 잠시나마 숨 쉴 틈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만 지난해 모든 자살 지표가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0대 이하(5.4%)와 80대 이상(0.9%)에선 오히려 자살 사망자가 늘었다. ‘4세·7세 고시’로 대표되는 입시 경쟁, ‘노노(老老)케어’가 흔해진 초고령사회의 그늘이 아동과 노인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6일 국무회의에서 높은 자살률을 언급하며 “대한민국 위상을 보건대 이렇게 자살자가 많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망신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한국은 자살자가 적다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수치가 선진국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자살 예방 예산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20년 넘게 달고 있는 한국의 자살 예방 예산은 올해 708억 원에 불과하다. 지난해보다 20.6% 늘었지만 일본이 지난해 자살 고위험군 발굴을 위해 학교 상담 강화에 쓴 86억 엔(약 814억 원)보다도 적다. 현장에서 “정책은 있는데 작동이 안 된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자살 예방 상담 전화도 투자가 부족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대표적 사례다. 상담원들은 내담자가 삶의 희망을 놓지 않도록 길게는 몇 시간씩 설득하고,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안내한다. 그러나 높은 업무 강도와 낮은 급여 탓에 1년도 못 버티고 그만두는 상담원이 많다. 전문성을 높이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인력이 부족해 전화를 놓치기 일쑤다. 그 전화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자살 고위험군이 마지막으로 보낸 “살려 달라”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국민의 목숨을 살리는 정부’라는 새로운 국정 목표를 제시했다. 모든 정책의 출발점을 국민 생명과 안전에 두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획기적인 자살률 감소를 기대하긴 어렵다. 중앙정부부터 지역사회까지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6·3 지방선거 후 당선자들이 임기 내 자살 사망자를 1만 명 이하로 줄이겠다는 공동 선언을 해주길 기대해 본다.




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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