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리스 하비 목사(왼쪽)는 군사정권 인권 유린 실태와 5·18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인권 운동가다. 그는 한국 민주화운동 국제 대변인 역할을 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찬호 씨 제공
최용주 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장(박사)은 논문 ‘광주항쟁과 초국적 후원 네트워크’를 통해 “하비 목사는 5·18민주화운동 직후 미국에서 의사 김영송 씨와 글렌 고든 씨를 불러 5·18 피해를 확인했다”고 14일 밝혔다.
두 미국인 의사는 광주의 참상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에 입국했다가 신군부에 며칠간 구류됐다. 둘은 1980년 6월 22일부터 28일까지 광주를 방문해 기독병원에서 찰스 베스 헨틀리 선교사를 만나고 5·18 사상자 등을 조사했다. 신군부가 전남도청에서 시민군을 진압한 지 28일이 지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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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전문가는 “미국인 의사 2명이 5·18 희생자의 X-레이 사진, 진료 기록을 보고 부상자 면담을 한 뒤 연성탄 사용 의혹을 제기했으나 계엄군의 M16 소총 총알은 납탄으로 몸에서 조각날 수 있다”며 연성탄 사용 가능성을 낮게 분석했다.
신군부는 김 씨에게 “조사서를 미국에 가져갈 수 없다”며 막으려 했다. 하지만 김 씨는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인 로버트 리치 씨를 만나 조사서를 전달하고 설명할 수 있었다. 김 씨는 독립운동가로 초대 서울시장을 역임한 김형민 씨(1907~1998)의 아들로 알려졌다.
하비 목사는 생전에 “5·18 진상 조사를 위해 북미한인인권위원회(NACHRK)가 의사 2명을 광주에 보냈다”고 말했다. 하비 목사가 북미한인인권위원회 실무 책임자인 사무국장으로 활동한 것을 감안하면 조사서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분석된다.
패리스 하비 목사(왼쪽 첫 번째)는 군사정권 인권 유린 실태와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인권운동가다. 그는 한국 민주화운동 국제 대변인 역할을 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찬호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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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 목사는 한국의 군부 독재 정권의 실상과 5·18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외국인 선교사, 성직자가 참여한 비밀 인권 모임인 월요모임의 핵심 회원이었다. 월요모임은 1968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방한한 험프리 미국 부통령을 만나 한국에서 벌어지는 인권탄압 등을 설명하기 위해 결성됐다.
월요모임은 한국 독재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정례화됐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이 월요모임 활동을 더 강화한 계기가 됐다. 월요모임은 매주 월요일 밤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독일 출신 개신교와 가톨릭 선교사의 집을 번갈아 가며 모였다. 월요모임은 신군부의 감시와 억압 속에서도 광주 진상 조사서, 각종 서신을 작성해 5·18 참상을 세계에 전했다.
패리스 하비 목사가 1991년 2월 9일 푸른 눈의 시민군으로 불리는 데이비드 돌린저 씨에게 쓴 편지.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5·18기념재단은 “하비 목사는 계엄군의 유혈 진압으로 오월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될 위기에 굽힘 없는 용기로 미국 의회와 국제사회에 한국 인권 실태를 고발했다”며 “광주가 고립된 섬이 아닌 인류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는 민주주의 성지가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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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