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림의 사이언스 랩] 호주 커틴대 공동연구팀, 7200광년 떨어진 백조자리 X-1에서 ‘춤추는 제트’ 포착
백조자리 X-1 상상도. 푸른 초거성에서 나온 물질이 블랙홀 주변 강착원반으로 끌려가고, 일부는 위아래 방향의 제트로 뻗어나간다. 호주 국제전파천문연구센터(ICRAR) 제공
별바람에 휜 블랙홀 제트
백조자리 X-1은 지구에서 약 7200광년 떨어진 대표적인 블랙홀 쌍성계다. 태양 질량의 약 21배에 이르는 블랙홀과 푸른 초거성인 동반성 HDE 226868이 서로의 주위를 돌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반성의 물질 일부가 블랙홀 쪽으로 흘러들어가고, 블랙홀 둘레에는 뜨겁게 달아오른 강착원반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물질이 모두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강한 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회전축을 따라 양극 방향으로 빠르게 분출된다. 이렇게 좁은 흐름을 이루며 우주 공간으로 뻗어나가는 에너지의 분출을 ‘제트(jet)’라고 부른다.
이 제트의 속도와 힘을 구체적으로 계산한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호주 커틴대와 국제전파천문연구센터(ICRAR), 영국 옥스퍼드대 등이 참여한 공동연구진은 18년 동안 축적된 고해상도 전파 관측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백조자리 X-1의 제트가 빛 속도의 절반가량인 초속 약 15만㎞로 뻗어나가며, 태양 1만 개가 내는 에너지에 맞먹는 출력을 지닌다는 결론을 얻었다. 연구 결과는 지난달 ‘네이처 천문학(Nature Astronomy)’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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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가 얼마나 휘었는지를 통해 제트가 어느 정도의 출력으로 뻗어나가는지를 계산할 수 있다. 기존에는 제트가 주변 가스와 충돌해 남긴 구조나 오랜 시간 쌓인 흔적을 바탕으로 장기간 평균 출력을 추정했다면, 이번 연구에서는 제트의 휜 형태를 이용해 순간 출력에 가까운 값을 계산했다. 그 결과 물질이 블랙홀 쪽으로 떨어지면서 방출하는 에너지 가운데 약 10%가 제트에 실려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블랙홀 주변에서 생긴 에너지의 일부가 제트를 통해 우주 공간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은하 성장의 변수로 떠오른 블랙홀
블랙홀 제트는 오래전부터 천문학자들이 주목해온 현상이다. 이번 연구는 제트의 속도와 순간 출력을 수치로 계산해 블랙홀 주변의 에너지 흐름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블랙홀을 ‘물질을 삼키는 천체’로만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제 관심은 블랙홀 주변에서 되돌아 나온 에너지가 더 넓은 우주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로 이어진다.
이러한 방향은 은하의 성장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은하는 차가운 가스가 뭉쳐 별을 만들며 자라지만, 모든 은하가 같은 속도로 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은하에서는 중심부의 거대한 블랙홀이 내뿜는 제트와 복사가 주변 가스를 데우거나 밀어내 별 탄생을 늦춘다. 반대로 제트가 주변 가스를 압축해 별 형성을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블랙홀 제트가 은하의 성장 속도와 방향을 바꾸는 변수로 다뤄지는 이유다.
최근에는 이런 작용을 은하 규모에서 보여주는 관측 결과도 나왔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연구에서는 나선은하 VV 340a 중심의 블랙홀 제트가 S자 형태로 흔들리며 은하 바깥쪽까지 뻗어나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 제트는 최대 2만 광년 규모의 뜨거운 가스 구조를 만들고, 별 형성의 재료인 차가운 가스를 가열하거나 밀어낸다. 그 결과 은하 내에서 새로운 별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줄어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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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연구는 이런 에너지 흐름을 더 많은 블랙홀에서 비교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별바람이나 주변 가스에 의해 휜 제트를 더 많이 관측하면 제트가 주변 환경으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실어 나르는지 천체별로 가늠할 수 있다. 서호주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건설 중인 스퀘어킬로미터어레이 관측소(SKA) 같은 차세대 전파망원경이 가동되면 먼 은하에서 블랙홀 제트를 대규모로 탐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호주 커틴대 커틴전파천문연구소의 제임스 밀러존스 교수는 보도자료에서 “이번 측정은 앞으로 관측될 제트들의 전체 출력을 보정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면서 “블랙홀 제트는 주변 환경에 에너지를 되돌려 보내는 중요한 통로이며 은하 진화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38호에 실렸습니다〉
이종림 과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