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가 을사늑약 체결 한 달 전인 1905년 10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사진)가 121년 만에 미국 워싱턴 의회도서관에서 발견됐다.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은 “고종이 을사늑약 저지를 위해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를 통해 보냈던 친서 원본을 최근 확인했다”고 5일 밝혔다.
친서는 ‘大韓國大皇帝敬問(대한국의 대황제가 삼가 묻습니다)’로 시작해 총 506자가 담겼다. 고종이 국권 수호에 필요한 친서 및 위임장에 썼던 비밀 인장 ‘皇帝御璽(황제어새)’가 찍혀 있다. 해당 친서는 헐버트 박사 회고록 등을 통해 내용은 알려졌으나 실물이 드러난 건 처음이다. 고종 연구의 권위자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친서 작성자(고종)와 작성일(10월 16일), 장소(경운궁)가 명확히 드러난 중요한 발견”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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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막아달라” 고종 친서 원본, 美도서관서 발견… 비밀옥새 선명
행동 노출 막으려 비밀옥새 찍어
헐버트 박사의 영역본 함께 발견
日 감시 피해 호텔방서 작성 추정
김동진 회장 30년 원본 추적 결실
헐버트 박사의 영역본 함께 발견
日 감시 피해 호텔방서 작성 추정
김동진 회장 30년 원본 추적 결실
고종 황제가 1905년 10월 을사늑약 체결을 막기 위해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실물. 미국 의회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마지막 부분엔 고종의 이름 경(㷩)과 국권수호 외교문서에 쓰였던 도장 ‘황제어새(皇帝御璽)’가 선명하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제공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당시 고종은 러시아 니콜라이 2세 황제로부터 이듬해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초청을 받은 상황이었다. 고종은 이 회의의 공동 주관자로 알려진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에게 대한제국의 상황을 미리 전할 필요성을 느끼고 친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친서는 내용도 원문으로는 알려진 바가 없고, 1993년 김기석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발견한 ‘헐버트 문서’에서 헐버트 박사가 영역한 내용이 파악됐을 뿐이었다. 이 교수는 “고종이 활발한 외교를 펼쳤음에도 외국 원수에게 보낸 친서 실물은 발견된 게 10종이 채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국권수호에 썼던 ‘황제어새’ 선명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왼쪽)이 지난달 21일 미국 워싱턴 의회도서관에서 고종황제의 친서 및 헐버트 박사의 영역본 실물을 확인하고 있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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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의 2009년 관련 전시 도록에 따르면 황제어새는 2과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1형’은 2008년 재미교포로부터 실물이 환수됐지만 ‘2형’은 여전히 행방을 모른다. 인영(印影)을 보면 이번 친서에 쓰인 어새는 ‘2형’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어새는 1905년 10월 10일 고종이 국명 미상의 황제에게 대한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힘써 달라고 보낸 친서(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유리원판 사진) 등에도 사용됐다.
● 현지서 친서 영역한 헐버트 손글씨
호머 헐버트 박사가 고종의 친서를 영역한 노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제공
헐버트 박사는 1905년 11월 중순 워싱턴에 도착했지만 백악관과 국무부의 냉대를 받았다. 일본이 밀사 파견 사실을 미리 알고 ‘만나주지 말라’며 미 정부에 사전 작업을 한 탓이다. 박사는 을사늑약 체결(11월 17일) 뒤인 11월 25일에야 국무장관과 면담하며 친서를 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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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은 30여 년 동안 헐버트의 후손과 협력해 친서 원본의 행방을 쫓아 왔다. 올해 3월 중순 기념사업회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앨리스 김 씨(미 다트머스대)가 미 의회도서관에 고종 친서가 있다는 정보를 파악했다. 김 회장은 도서관의 ‘루스벨트 문서’ 담당자인 크롤 박사를 통해 고종의 친서와 손글씨로 된 영역문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달 21일 미국에서 실물을 촬영했다.
“헐버트 박사, 위험 무릅쓰고 고종 밀사로 최선”
김동진 기념사업회장 활약 소개
“공적심사 제대로 다시 했으면”
“공적심사 제대로 다시 했으면”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에서 만난 김동진 회장은 “박사는 공적 심사도 제대로 없이 서훈이 이뤄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은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기념사업회에서 “헐버트 박사는 한국을 잘 알면서 일본의 부당함에 저항하고 있었고, 특히 고종 황제를 비롯한 대한제국의 관리들이 크게 신뢰하는 인물이었기에 밀사로 최적의 인물이었다”고 설명했다. ‘을사늑약에 서명한 적이 없으니 무효’라는 고종의 전보를 받고, 이를 뉴욕타임스(NYT) 등을 통해 공개하며 일본의 부당함을 폭로한 것도 그였다는 것.
김 회장은 “오늘날의 한글 전용 역시 헐버트의 주장이 관철된 결과”라며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당대 독립운동을 한 지식인 가운데 박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고 덧붙였다.
박사는 별세 이듬해인 1950년 외국인에게 주는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받았고, 태극장은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으로 일괄 변경됐다. 독립장은 건국훈장 5등급 가운데 대한민국장과 대통령장에 이어 세 번째다. 김 회장은 “1950년 당시 헐버트에 대해 공적 조사를 못 했을 것이 확실하다”며 “훈격을 억지로 올려 달라는 게 아니다. 국가보훈부는 심사라도 제대로 다시 해 박사의 삶을 실상대로 평가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