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2025.09.26.서울=뉴시스
지난해 1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통령경호처 간부들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체포영장을 집행하려 했던 이날 윤 전 대통령이 당시 상황을 폐쇄회로(CC)TV로 확인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 윤 전 대통령은 경호처 간부들에게 “현장에서 조치해 문을 닫도록 노력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고 한다.
29일 윤 전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저지’ 혐의 등에 대해 1심(징역 5년) 보다 무거운 징역 7년을 선고한 서울고법 내란전담재판부(부장판사 윤성식)가 판결문에 적시한 체포영장 집행 당일의 상황이다. A4용지 125장 분량의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공수처의) 수사권 등에 의문이 있었더라도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를 해결하는 대신에 물리력을 동원해 (영장 집행을) 저지하려 한 건 법치주의 원칙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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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해 “(경호처 간부들의 체포영장 집행 거부) 범행에 공모해 가담했고 동시에 범인도피 범행을 교사했다”고 판단했다. “공수처의 영장 집행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 영장 집행 거부에 대해 물리력 동원 등을 지시한 적 없다”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8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공관 압수수색 이후 박종준 전 경호처장을 크게 질책했던 점에 주목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박 전 처장은 압수수색에 나선 수사관의 눈을 안대로 가린 채 국방부 장관 공관으로 들어가게 했고, 압수물을 받아 가도록 했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이 제한적으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에 협조했던 박 전 차장을 강하게 질책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박 전 처장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게 되자 이후 (윤 전 대통령) 체포영장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며 “박 전 처장과 김성훈 전 경호처 차장은 (수사에 협조할 의사가 없다는 윤 전 대통령의) 언급을 체포영장 등에 대한 불응 지시로 받아들여 차벽 설치나 인력 동원 등 구체적 계획을 수립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윤 전 대통령이 공수처 검사의 공관촌 진입을 비롯한 전반적인 영장 집행 과정을 보고받았고, 공수처 검사들이 해산한 뒤 박 전 처장에게 “고생했다”는 취지로 말하는 등 영장 집행 거부 행위를 승인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 법원 “계엄 국무회의 심의권 침해는 그 자체로 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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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재판부는 국무회의 소집 통지에 대해 “적어도 국무위원이 현실적으로 참석 가능한 시점에 이뤄져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참석할 수 없는 방식으로 통지가 이뤄졌고 실제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면 이는 국무위원의 심의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박상우 국토부 장관이 계엄 국무회의 30분 전, 안덕근 전 산업통상부 장관은 회의 15분여 전에 소집 연락을 받은 점을 근거로 들어 “정족수를 빠른시간 내 채우기 위해 연락한 것으로 보일 뿐 실질적으로 의견을 들을 의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현직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내란·외환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곤 형사 소추를 받지 않아서 수사 대상도 될 수 없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수사가 반드시 공소제기(기소)를 전제로 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달리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제한하는 법령상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대통령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에 대한 수사가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다”는 등의 언론공지(PG·프레스가이드)를 외신에 전달하도록 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1심의 무죄 판단과 달리 유죄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보도자료 작성 배포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 일환으로 국민이 해당사항에 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도록 해서는 안 되는 주의의무를 부담한다”며 “(담당 비서관이 전달한 공지는) 객관적인 사실관계에 반하는 것으로 보도자료 작성 배포에 관한 주의의무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언론 공지 전달을 지시한 윤 전 대통령에 대해 “계엄 선포 과정에서 저질러진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것”이라며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 신인도는 물론 국민 알권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에 해당해 비난 정도가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고도예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