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IPO 예고편, 스페이스X
스페이스X가 공개한 미래 달 착륙 상상도. 스페이스X 제공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탈 대표
스페이스X의 몸값 변화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2024년 6월 약 2100억 달러였던 기업가치는 같은 해 12월 3500억 달러, 2025년 7월 4000억 달러로 오르다가 그해 12월 8000억 달러로 수직 상승했다. 올 2월 사모시장에서는 1조3100억 달러로 평가됐다. 1년 반 만에 6배가 뛴 셈이다. 최종 2조 달러로 상장에 성공한다면 미 상장사 시가총액 5위 안에 곧장 진입한다. 시장은 IPO 사상 처음으로 일반 투자자에게 30%의 물량을 배정할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통상 1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월가가 거액의 베팅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회사는 더 이상 머스크의 ‘화려한 취미’가 아니다. 2025년 한 해 165차례 팰컨9 로켓을 쏘아 올려 미국 전체 궤도 발사의 약 85%를 차지한 발사 시장의 슈퍼파워다. 이에 더해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한 위성통신 강자 스타링크의 모회사이며, 우주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는 신산업의 개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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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X의 우주 발사체이자 달과 화성 탐사에 쓰일 ‘스타십’이 미국 텍사스주 보카치카 해변의 우주발사장 ‘스타베이스’에서 발사 준비를 하고 있다. 스페이스X 제공
스페이스X의 역사는 곧 머스크의 야망사다. 페이팔 매각으로 거액을 쥔 머스크는 2002년 캘리포니아주 엘세군도의 한 창고에 회사를 세웠다. 시드머니는 1억 달러였고, 목표는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들겠다”였다. 출발은 처참했다. 2006∼2008년 세 차례 발사한 팰컨1이 모두 폭발했다. 자금은 바닥났고, “괴짜 정보기술(IT) 사업가의 우주 장난감이 끝났다”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벼랑 끝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2008년 9월 팰컨1 4차 발사가 성공했고, 같은 해 12월 미 항공우주국(NASA)이 16억 달러 규모의 국제우주정거장(ISS) 화물 보급 계약을 맡겼다. 2015년 12월 팰컨9 발사 후 1단 부스터를 지구로 멀쩡하게 회수했다. 한 번 쓰고 버리던 로켓이 비행기처럼 다시 사용되는 시대가 열린 순간이었다. 1단 추진체가 전체 비용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재사용은 발사 비용을 대폭 낮췄다. 경쟁사 유나이티드론치얼라이언스(ULA)가 발사 한 건당 4억 달러를 부르던 시절, 스페이스X는 같은 임무를 6000만 달러대에 가져왔다. 글로벌 발사시장 판도가 달라졌다.
AI-우주 인프라 기업으로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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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X는 올 2월 정체성을 흔드는 도박을 했다. 머스크의 AI 기업 ‘xAI’를 전량 주식 교환 방식으로 합병한 것이다. 합병 후 통합 법인 가치는 1조2500억 달러다. 블룸버그는 이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이라고 평가했다.
합병 이유는 명확하다. 우주에 거대한 AI 데이터센터를 띄우겠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합병 사흘 전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최대 100만 기 규모의 ‘궤도 컴퓨팅 위성군’ 운용 신청서를 제출했다. 태양광으로 전력을 공급받고, 진공 우주의 자연 냉각 환경을 활용해 지상 데이터센터의 전력·냉각 한계를 우회하겠다는 구상이다. 머스크는 “2, 3년 안에 지상 데이터센터보다 비용이 더 저렴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 거창한 계획을 실현할 무기가 초대형 화성 탐사 우주선 ‘스타십’이다.
4월 21일에는 AI 코딩 스타트업 ‘커서(Cursor)’를 600억 달러에 인수하는 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바이브 코딩(일반 언어로 대화하듯 코딩하는 것)’ 열풍을 주도하는 커서를 품으면 xAI의 거대언어모델 ‘그록(Grok)’과 결합해 개발자 생태계까지 장악할 수 있다. 발사, 통신, AI 모델, 개발 툴까지 한 회사 아래로 빨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롤러코스터 타는 월가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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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우려는 눈높이를 너무 높였다는 것이다. 2026년 예상 매출 200억 달러대 기준 시가총액 2조 달러는 주가매출비율(PSR) 80배 수준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평균(약 3배)이나 우주 인프라 기업 평균(10배 안팎)과 비교가 안 된다. 스페이스X는 마진이 높은 소프트웨어 기업이 아니라 막대한 자본 지출이 요구되는 하드웨어 기업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리스크도 제기된다. 첫째, ‘머스크 리스크’다. 지난해 6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머스크의 사이가 틀어진 뒤 미 행정부는 1750억 달러 규모의 미사일 방어망 ‘골든돔’ 프로젝트에서 스페이스X 의존도를 낮추려고 하고 있다. 둘째, 경쟁 격화다.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가 이끄는 아마존은 올해 중반 위성통신 ‘아마존 카이퍼’를 정식 개시한다. 또 우주기업 블루오리진을 통해 대형 발사체 ‘뉴 글렌’을 띄우기 시작했다. 셋째, xAI 자금 부담이다. 산업 분석가들에 따르면 xAI는 매월 10억 달러를 태우고 있다. 본업이 만든 현금을 자회사가 거의 다 쓰는 구조다. 넷째, 스타십 실행 리스크다. 우주 AI 데이터센터, 달과 화성 진출, 차세대 위성 모두 스타십의 성공을 전제로 한다. 지난해 시험비행 5차례 중 3번이 실패로 끝났다.
시작된 상장 카운트다운
월가가 스페이스X에 2조 달러를 매기는 것은 단순한 우주기업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발사장, 위성, 통신망 등 21세기 인프라의 길목을 손아귀에 쥔 기업에 대한 가격이다. 머스크는 늘 “공개시장의 분기 압박은 장기 비전을 좀먹는다”고 외쳐 왔다. 그러나 우주에 100만 기의 위성을 띄우고, 화성과 달 기지로 향하는 꿈을 위해선 비공개시장이 감당하지 못할 자본이 필요했다. 발사대에 장착된 로켓의 점화 직전, 월가 전체가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있다.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