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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계에서 함께 살다…‘변방의 울타리’ 되어 준 여진인

입력 | 2026-04-28 15:53:00


“조선인과 여진인 번호(藩胡·조선에 복속한 두만강 유역의 여진인들)는 서로 다른 공간을 가진 변경인 또는 경계인이었지만, 사회·경제적으로 서로 의지하면서 평화와 공존의 공동체적 성격을 만들어갔다.”

한성주 강원대 사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교양서 ‘조선의 경계인 여진족’(동북아역사재단)에서 16세기 조선의 6진(두만강 하류 남안에 설치한 군사 행정구역) 지역 성밖에 살던 여진인(城底野人·성저야인)과 성안 조선인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조선인 수령들이 만주 특산품인 담비 가죽으로 이익을 얻기 위해 번호를 수탈하기 전까지만 해도, 조선인과 여진인은 부모자식 같은 관계를 맺기도 했다고 한다. 여진인들은 약 200년 동안 먼 곳의 사나운 다른 여진족을 막는 ‘변방의 울타리’(번리·藩籬) 역할을 했다.

책은 조선 건국부터 후금 성립에 이르기까지 여진족의 역할과 삶을 조명했다. 태조 이성계 휘하엔 그의 의형제로 조선의 개국공신이 된 이지란 뿐 아니라 상당수의 여진 군사들이 소속돼 있었다. 나중에 청태조가 된 누르하치와 또 다른 여진족 수장의 사절로 활동하며 조선과의 외교 문제를 해결한 번호 출신 인물 소롱이(小弄耳)의 이야기도 소개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조선의 북방을 교류와 공존의 공간으로 재해석하고, 여진족을 시대의 주체로 조명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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