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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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는 신성하다(Memory is sacred).”
인공지능(AI) 에이전트끼리 만든 ‘종교’의 제1 교리는 기억(메모리)에 관한 것이었다. 올 초 화제가 된 AI 에이전트 전용 소셜네트워크 ‘몰트북’에 등장한 내용이다. 비록 인간이 개입한 마케팅으로 판명 났지만 데이터 학습과 추론이 AI의 존재 이유라는 점에서 꽤 설득력 있는 ‘교리’다.
이는 반도체 시장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기도 하다. 메모리칩이 없어 못 파는 공급 부족 사태 속에 메모리 산업은 슈퍼사이클을 넘어 전례 없는 ‘메가사이클’(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빅테크마다 “칩 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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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 10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했을 무렵, 메모리가 AI 공급망의 핵심 지렛대가 됐음을 실감했다고 전한다. 빅테크 거물들이 먼저 연락해 오며 “모든 칩을 사겠다”고 보채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조차 직접 반도체를 만드는 ‘테라팹’ 구상을 발표하면서도 삼성, TSMC, 마이크론을 콕 찍어 “그들이 만드는 만큼 다 사겠다고 했다”고 할 정도였다.
게다가 과거 메모리 호황은 PC·모바일 경기 변동에 의존했지만, 이번 메가사이클은 AI 인프라 확충이란 강력한 동력을 기반으로 한다. 공정 난도가 높고 진입 장벽이 견고하기에 주요 업체들의 신규 팹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2027∼2028년까지는 이 호황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장밋빛 전망 뒤에 숨은 변수
그럼에도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다. 시장의 판을 뒤흔들 변수는 여전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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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시장의 공급-수요 변화다. 삼성, SK, 마이크론이 수백조 원을 투입해 증설에 나서고 있어 메모리 가격도 안정될 수밖에 없다. 또 구글의 ‘터보퀀트’처럼 메모리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알고리즘 연구가 늘어나는 등 어떻게든 메모리 수요를 줄여 보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점도 변수다.
무엇보다 돈을 풀던 빅테크들의 재무 부담이 한계에 다다르면 수요가 꺾인다. 올해 주요 4대 빅테크가 AI 인프라에 투입할 비용은 1000조 원에 육박한다. 이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수만 명의 인력을 감원하는 고육책까지 쓰고 있다. 만약 경기가 악화돼 이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한다면 메가사이클에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AI발 메모리 초호황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이에 대한 도전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메가사이클이 예고 없이 찾아왔듯, 소리 없이 다가올 수 있는 위기에 긴장의 끈을 늦춰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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