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기수였던 박태종은 올해부터 심판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마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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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장
충북 진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박태종은 어릴 때 키가 작고 왜소했다. 운동 신경은 좋은 편이었지만 할 만한 운동이 없었다. 특수 부대에 가고 싶었지만 체중 미달로 병역도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키 147cm, 몸무게 46kg이다.
고교 졸업 후 서울 마포구 이모부의 야채 가게에서 배달일을 돕던 그는 포클레인 기사가 되려 했다. 틈틈이 학원을 다녔고, 현장 조수로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강원 춘천으로 기사 시험을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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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소한 체격은 축복이었다. 그는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었다. 다른 기수들은 경기일엔 몸을 가볍게 하려고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삼시 세끼에 간식까지 챙겨 먹고 말을 탔다. 박태종은 “말을 잘 다루려면 기수가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훨씬 유리했던 셈”이라며 웃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술도 못 마신다. 선수들에게 술은 무척 위험하다. 건강은 차치하고 술자리에서 무심코 뱉은 말이 승부 조작 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 적지 않은 기수들이 불상사에 휘말려 옷을 벗었다. 그는 “술을 마셨다면 정년까지 말을 타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수십 년간 ‘대통령’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철저한 자기관리였다. 새벽형 동물인 말은 오전 일찍 훈련시켜야 한다. 박태종은 39년간 한 번도 새벽 조교에 늦은 적이 없다. 박태종은 “항상 오후 9시 이전에 잠들었다. 그래서 9시 뉴스를 본 적이 없다. 세상 돌아가는 건 8시 뉴스를 통해 접했다”고 했다. 절제된 생활 속에 후배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운동도 꾸준히 했다. 몸에 나쁘다는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천하의 박태종도 부상은 피하지 못했다. 여러 번 낙마했고, 20여 차례 수술과 입원을 반복했다. 1999년에는 말발굽에 짓밟혀 척추를 크게 다치기도 했다. 박태종은 “은퇴 후 가장 좋은 건 부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역시 마음이 편한 게 최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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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장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