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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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영 미술 칼럼니스트·‘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저자
INFJ, 에코이스트(echoist), 내성적. 나를 설명하는 단어다. 늘 긴장도가 높은 소심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알고 있다. 세상에 던져진 모든 이가 흙탕물에 발을 담갔다 빼기를 반복하고 있음을. 다만 타인의 작은 감정 흐름도 눈치채는 예민한 이들은 삶의 난도가 높다. 소풍 전날에는 소나기가 올까 봐, 피아노 발표회를 앞두고는 악보 읽는 법을 잊어버릴까 봐 걱정했다. 불면증과 과한 불안은 평생 친구다.
분투했다.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사람을 따라 해보고, 심리학 책을 쌓아 두고 읽기도 했다. 에너지만 소모될 뿐이었다. 경험을 늘리며 답을 찾았다. ‘두려워도 한다’, ‘정직한 노력은 드러난다’라고 되뇌며 나아갔다.
얼마 전 미술사학도로서 첫 학회 발표를 했다. 발끝까지 뻗치는 떨림은 우황청심환으로도 잠재워지지 않았다. 직장에서는 나만 아는 비루함을 자주 마주한다. 그때마다 이 우주 어딘가에 ‘나의 히스클리프’가 존재함을 믿는다. 그저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두려움과 끝없이 침잠하는 이 적막을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 나보다 더 나 같은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난다. 잘 살 수 있다고 다짐해 본다. 비록 ‘워더링(wuthering·비바람이 휘몰아치는)’이라는 형용사와 어울리지 않는 나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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