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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송인호]K컬처로 높인 국격, 완성의 열쇠는 시민의식

입력 | 2026-04-09 23:18:00

지난해 수출 7093억 弗, 日 턱밑까지 추격
삼성전자 빅테크 체급-K팝 美 주류서 인정
시민적 품격은 외형적 성장 따라가고 있나
품격 있는 시민의식이 ‘K국가 브랜드’ 완성



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대한민국이 문화적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 반세기 전, 전쟁의 폐허 위에서 국제사회의 원조에 기댔던 이 나라는 이제 전 세계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문화 생산지’로 당당히 우뚝 섰다. 놀라운 것은 이 성취가 문화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의 대동맥인 수출 전선에서도 한국은 역사적 전환점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2025년 한국의 수출액은 7093억 달러(약 1050조 원)를 기록하며 ‘수출 대국’ 일본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이어 2026년 1분기 수출액은 2193억 달러로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사상 처음으로 연간 기준에서도 일본을 추월할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왔다.

삼성전자는 최근 올 1분기 잠정 실적을 공개한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분기 영업이익이 사상 처음으로 50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2025년 연간 영업이익 43조6000억 원을 단 한 분기 만에 넘어서는 경이로운 수치다. 엔비디아, 애플 등 극소수 글로벌 빅테크만이 보유한 기록에 삼성전자가 나란히 이름을 올리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이러한 산업적 성취는 K컬처의 비상과도 맞닿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콘텐츠 산업의 매출액은 157조 원을 돌파했다. 수출액 역시 140억 달러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K콘텐츠가 늘어날 때마다 한국이라는 브랜드 자체를 세계인의 일상 속에 각인시키는 강력한 힘이 되고 있다.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APT.)’는 빌보드 핫100에서 45주간 롱런하며 최고 3위에 올랐고,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곡 ‘골든’은 넷플릭스 최다 시청 기록을 경신했다. 2026 그래미 어워즈에서 ‘골든’은 K팝 최초로 수상하는 역사를 썼고, ‘APT.’와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까지 본상 후보에 오르며 K팝의 미국 주류 음악 편입을 공식화했다. 영화계에선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달성했고, 배우 이병헌이 올해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K시네마의 저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필자는 이를 보며 2016년 에티오피아 방문 기억을 떠올렸다. 한국의 경제 발전 경험을 공유하고 정책 자문을 제공하기 위해 현지 건설부 장관과 고위 관료들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놀라웠던 것은 이들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못지않게 역동적인 문화 콘텐츠에 경의를 표하며 부러워했다는 점이다. 차가운 경제지표를 넘어 한국이라는 나라가 뿜어내는 문화적 에너지에 매료되는 모습을 보며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느꼈다.

그날의 감동은 10년이 흐른 지금, 더 크고 확실한 경이로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전 세계 첨단산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나라로 올라섰음을 보여 주고 있다. 문화와 산업, 기술과 콘텐츠,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명실상부한 세계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걸음 멈추고 조용히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외형적 성장이 정점에 달한 지금, 진지한 질문이 우리 앞에 놓인다. “비약적인 국력과 문화적 영향력에 걸맞은 시민적 품격은 과연 그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가?”

아쉽게도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모습을 자주 마주한다. 익명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타인의 인격을 함부로 대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무분별하게 퍼뜨리는 일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나와 의견이 다르면 ‘틀린 것’을 넘어 ‘악한 것’으로 규정하고, 논리적 반박 대신 낙인을 찍어 상대를 매장하려는 방식도 우려스럽다. 이는 단순한 온라인 문화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의 신뢰 자본을 잠식하고, 결국 경제와 제도의 효율성까지 흔드는 문제다.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공격하는 사회에서는 협력의 비용이 커지고, 갈등의 비용이 증가하며 정책의 일관성도 흔들린다.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인프라가 조금씩 훼손되는 것이다.

문화와 경제가 한 국가의 ‘얼굴’과 ‘근육’이라면, 성숙한 시민의식은 그 나라의 ‘영혼’이자 흔들리지 않는 ‘기초’다. 진정한 선진국은 단순히 1인당 GDP가 높거나 K팝이 전 세계 차트를 석권하는 나라만을 뜻하지 않는다. 필자는 다음 세대가 마주할 대한민국을 그려 본다. 우리의 반도체가 전 세계의 두뇌가 되어 미래를 열고, K컬처가 세계인의 감성을 어루만지며, 우리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전 세계인이 닮고 싶어 하는 품격의 기준이 되는 나라. 대한민국이 K국가 브랜드로서 완성되는 모습을 기대한다.

이 글은 필자의 견해이며 KDI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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