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 〈1〉 고야 ‘수레를 타는 아이들’ 등 젊은 시절 성공가도 왕실 화가로 활약 로코코 양식 특유 우아한 색조-세련미 갑작스런 청력 상실에 전쟁-혁명 등 겪어 시대 절망-고독 담긴 ‘흑색 회화’ 화풍으로
프란시스코 고야의 ‘수레를 탄 아이들’(1778년). ⓒToledo Museum of Art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에 출품된 고야의 ‘수레를 타는 아이들’(1779년)은 과거 스페인 궁전의 벽면에 걸 태피스트리(직물 공예)의 밑그림으로 제작됐다. 그림을 완성했을 당시 고야의 나이는 서른셋. 1786년 스페인 왕실 화가로 임명되기 전,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한 때였다.
● 승승장구 젊은날의 에너지
고야는 1770년대 중반부터 왕립 태피스트리 공장을 위해 60점이 넘는 대형 밑그림을 그렸다. ‘수레를 타는 아이들’은 그중 하나.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도현 컬쳐앤아이리더스 큐레이터는 “당시 유행하던 로코코 양식 특유의 밝고 우아한 색조를 유지하면서도 스페인적인 강한 명암과 감정의 생기를 더한 작품”이라며 “스페인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로 이어지는 세련된 형식미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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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말년에 이른 고야의 그림은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로 뒤집힌다. 1820년부터 1823년까지 고야가 자기 집 벽에 그린 ‘흑색 회화’ 연작은 암울해진 화풍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독서하는 남자들’(1820∼1823년). ⓒMuseo Nacional del Prado
특히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에서 광기 어린 눈을 번뜩이는 아버지가 피를 뚝뚝 흘리며 아이를 뜯어먹는 모습은 충격과 혼돈을 준다. 누군가에게 의뢰받은 것도, 전시하기 위한 용도도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절망과 고독이 독창성을 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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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탄했던 그의 예술 인생을 뒤흔든 첫 번째 시련은 1792년경에 찾아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중병을 앓은 끝에 청력을 상실했다. 외부 세계와의 소통이 줄어든 정적 속에서 고야의 시선은 세속 이면의 어두운 심연으로 향했다. 설상가상으로 혁명과 전쟁이 이어지며 수많은 죽음을 접한 고야는 크나큰 회의와 절망에 빠지고 만다. ‘흑색 회화’는 노년의 작가가 대면한 시대적 절망과 내면의 고독이 담긴 처절한 기록이었던 셈이다.
고야는 이 시기 이른바 ‘귀머거리의 집(Villa of the Deaf One)’으로 불리는 그의 별장에 침잠한 채 우울을 갉아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예술세계는 더없이 깊어졌다. 오늘날 그는 18세기 스페인 궁정 대표 화가인 동시에 “19세기 근대 회화의 출발점을 연 인물”로 평가된다. 아들인 하비에르 고야는 아버지에 관한 회고록에 이렇게 기록했다.
“아버지는 고립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독창성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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