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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론/박주헌]이란 전쟁발 유가 급등, 에너지 과소비 구조 손질 계기 돼야

입력 | 2026-03-13 23:12:00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유가 변동성 확대
석유 최고가격제 대책 시장 왜곡 키울 우려
저에너지 가격 정책이 과소비 구조 고착시켜
시장친화적 에너지 가격 체계 개편 서둘러야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 변동성이 극단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한때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던 국제유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쟁 조기 종식 가능성 언급에 몇 시간 만에 80달러대로 떨어지는 등 널뛰기 장세를 보이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를 넘고 에너지 다소비 산업 비중이 높은 한국에서 유가 급등은 단순히 물가 문제가 아니다. 경상수지 악화와 환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거시경제 충격변수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정부가 꺼내든 대응책은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석유 최고가격제’다. 가격 급등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최고가격제는 목표 달성은커녕 숱한 부작용만 낳고 실패로 끝나기 쉬운 정책이라서 우려가 크다.

콩값이 오르면 두부 가격이 오르는 것처럼 원유 가격이 오르면 석유제품 가격도 따라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최고가격제를 통해 가격 상승을 틀어막아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발상은 마치 체온계의 최고 온도를 36.5도에 맞춰 놓고 정상 체온이라고 억지를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체온계 숫자가 정상이라고 해서 환자의 고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최고가격제는 겉으로만 가격이 안정된 것처럼 보이게 할 뿐, 실제로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한 채 다양한 경제 왜곡만 양산하게 된다.

가격은 희소성의 표현이다. 흔하면 싸지고, 귀하면 비싸진다. 우리나라는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에너지가 귀한 에너지 빈곤국이다. 당연히 에너지 가격은 비싸야 정상이다. 그런데 국내 에너지 가격은 오히려 싼 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전기 요금과 도시가스 요금은 2025년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약 70% 수준에 불과하다. 대단한 모순이다.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되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전기와 가스 요금은 정부 영향력 아래에 있는 규제 가격이라는 사실에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서민 보호, 산업 경쟁력 제고, 물가 관리 등을 명분으로 저에너지가격 정책을 내걸고 전기와 가스 요금을 억눌러 온 결과다.

이번에 최고가격의 대상이 된 석유 가격은 전기, 가스와 달리 1977년 석유 시장 자유화 이후 가격 통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번 석유 최고가격제는 그나마 하나 남은 자유화된 석유 가격마저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의미다. 여기에 유류세 인하 연장까지 더하면 흔들림 없이 저에너지가격 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선언이다.

물론 저에너지가격 정책은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키운 원천이었다. 상대적으로 낮은 에너지 가격은 제조업의 비용 경쟁력을 높여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성적인 에너지 낭비를 조장한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1인당 에너지소비량은 OECD 회원국 중 5위에 이를 정도로 많다. 에너지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 탓도 있지만 반바지 난방, 개문 냉방, 대형차 선호 등과 같은 값싼 에너지 가격에서 비롯된 에너지 낭비 요인도 많다.

값싼 에너지로 산업 경쟁력을 지키던 시대는 지나갔다. 탄소 규제 강화, 에너지 수입 의존에 따른 안보 위험, 최근과 같은 국제 유가 변동성까지 고려하면 에너지 낭비 구조는 점점 국가 경쟁력에 부담이 되고 있다. 오히려 에너지절약이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소비자들은 가격에 민감하다. 비싸면 절약하고, 싸면 낭비하기 마련이다. 소비자들의 에너지 낭비는 무죄다. 가격 신호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정부의 에너지 가격 정책이 유죄다.

에너지 가격 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정확한 시장 수급 상황을 반영한 가격 신호를 회복시켜 합리적 수요를 유도해야 한다. 에너지는 전 세계 수급 상황과 동떨어질 수 없는 글로벌 재화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 전 세계와 더불어 절약의 고삐를 당기고, 유가가 안정되면 정상 소비로 돌아오는 것이 순리다. 국내 에너지 가격 체계를 국제 가격과 연동된 시장친화적 체계로 개편해야 하는 이유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 최고가격제와 같은 가격 통제 수단을 동원해 가격을 조정하려 들지 말고, 고유가에 순응해 강도 높은 절약을 유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최고가격 도입의 목적이 정유사 폭리 방지라면 독과점 규제가, 서민 보호라면 에너지바우처 같은 직접 보조가 상책이다. 가격은 조정 대상이 아니라 순응해야 할 대상이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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