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카를로스 씨, 저는 꿈을 꾼 것일까요. 콜롬비아에 다녀온 지 불과 1주일이 지났는데 벌써 아득해요. 편도 25시간의 여정은 진작에 각오했지만,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죠. 이른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환승 예정이던 미국 뉴욕행 비행기는 갑작스러운 뉴욕의 폭설로 출발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영국 런던에서 환승해 콜롬비아 보고타로 향하는 대안밖에 없었죠. 장장 30시간 만에 보고타 엘도라도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보고타행 비행기에서는 가브리엘 마르케스(1927∼2014)의 ‘백년의 고독’을 읽었습니다. 콜롬비아가 낳은 세계적 소설가로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마르케스의 본업은 신문기자였지요. 가상의 마을 ‘마콘도’에서 펼쳐지는 한 가문의 100년 역사를 다룬 책의 서두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세상이 생긴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많은 것들이 이름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지칭하려면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켜야만 했다.’ 제게 콜롬비아는 마콘도와 다름없던 미지의 세상이었습니다.
● ‘구름 위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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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순례자들의 성지인 몬세라테 언덕.
보고타 시민들은 일요일 아침마다 몬세라테 언덕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걸어 오른다고요. 몬세라테는 단순한 전망대가 아니라 정상에 성당이 있는 순례의 언덕이었어요. 작은 수조에 동전을 던지고 간절하게 소원을 빌다가 눈가에 눈물이 맺혔어요. 그때 언덕에는 옐로우 엘더가 피어 있었습니다. 노란색 나팔 모양 꽃이 제 소원에 응원의 마음을 건네는 듯했어요.
콜롬비아 보고타 구시가지 ‘라 칸델라리아’. 풍부한 색감의 벽화로 가득 찬 골목길을 걷다 보면 콜롬비아의 세계적 소설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마술 같은 글이 저절로 떠오른다.
● 지적인 예술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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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안에 들어서자 행복감이 뭉게구름처럼 밀려왔어요. 보테로의 그림 속 인물들은 권력자도, 모나리자도, 발레리나도 모두 둥글둥글하지요. 꽃다발 속 꽃들마저 동그래요. 이곳 사람들은 삶의 모진 부분들을 이렇게 부드럽게 넘겨 내는 건 아닐까요. 콜롬비아 우버 택시 아저씨의 말이 문득 떠올랐어요. “차창을 활짝 열면 오토바이를 탄 소매치기가 승객의 손에 든 휴대전화를 잡아챌 수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콜롬비아 사람들은 선량하고 친절하답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형식을 따른 보테로 미술관의 정원.
보테로 미술관 길 건너편 건물의 연갈색 벽면에는 스페인어로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정원을 가꾼다는 건 내일을 믿는 일이다-오드리 헵번.’ 알고 보니 이 건물은 100만 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루이스 앙헬 아랑고 도서관이었어요. 2007년 유네스코가 ‘세계 책의 수도’로 보고타를 선정한 이유를 알 만했지요.
보고타 지식인들이 즐겨 찾는 레르네르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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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씨, 당신에게 특히 고마운 게 있어요. 보고타 식물원에 동행해 준 거요. 실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가보고 싶던 곳이었답니다. 안데스산맥의 세 지맥이 흐르는 데다 아마존 열대우림과 카리브해 해안까지 끼고 있는 콜롬비아에는 4000종 넘는 난초와 1900종 넘는 새가 서식해 지구의 새 다섯 종 중 한 종이 이곳 하늘을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세계적 생물다양성 국가의 생태계를 압축해 보여 주는 장소가 바로 보고타 식물원입니다.
보고타 시민들의 휴식처인 시몬 볼리바르 공원 바로 옆에 있는 보고타 식물원의 정식 명칭은 ‘호세 셀레스티노 무티스 식물원’. 식물원에 들어서기 전 맨 먼저 마주치게 되는 흉상의 인물이 호세 셀레스티노 무티스(1732∼1808)였습니다. 보고타에 백신을 도입한 스페인 신부이자 과학자인 그는 콜롬비아 식물과 동물 연구에 일생을 바쳤죠.
매표소 옆에는 높다란 야루모 한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콜롬비아 산과 숲을 마치 눈 덮인 산처럼 보이게 하던 커다란 은빛 잎의 바로 그 나무였어요. 이 나무는 단순한 경관 식물이 아닙니다. 훼손된 숲에서 가장 먼저 자라면서 새들에게 잎과 열매를 제공해 생태계를 되살립니다.
6개 모듈로 구성된 보고타 식물원 유리 온실.
보고타 식물원 유리 온실 ‘엘 트로피카리오’의 슈퍼 파라모.
‘엘 트로피카리오’의 건조 열대림 온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뉴욕을 거쳤으니 이번에 지구 한 바퀴를 돈 셈입니다. 힘든 여정이어서 아직도 체력을 회복하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보고타가 벌써 그립습니다. 콜롬비아 로컬 카페 ‘크레페 앤드 와플’의 크레페와 아이스크림, 당신이 단골로 다닌다는 스페셜티 커피숍 ‘아모르 퍼펙토’의 커피 맛도 잊을 수 없어요. 어떡하죠. 예술과 정원, 커피 향이 어우러진 지구 반대편 보고타가 자꾸 마음에 어른거려요. 저, 보고타와 사랑에 빠졌나 봐요.
글·사진 보고타=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