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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 못 받았는데 사기 아니라고?…법원이 보는 건 ‘이것’

입력 | 2026-03-10 09:52:00

전세 계약 서류를 두고 고민하는 세입자들 모습.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더라도 계약 당시 임대인의 기망 여부에 따라 전세사기와 단순 보증금 미반환으로 법적 판단이 달라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전세 계약이 끝났는데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세사기’가 아니라는 판단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같은 보증금 피해를 입고도 누군 형사 사건의 피해자가 되고, 누군 단순 민사 분쟁 당사자로 남는다.

법조계에서는 “전세사기 판단 기준은 계약 종료가 아니라 계약 당시”라는 설명이 나온다. 계약을 체결하던 순간 임대인의 상황과 임차인이 어떤 설명과 자료를 확인했는지가 형사 책임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 전세사기와 단순 미반환…결정적 차이는 ‘계약 당시 기망’

전세사기로 형사 처벌이 이뤄지려면 임대인이 계약 체결 당시부터 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단순히 결과적으로 돈을 돌려주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사기 성립이 어렵다.

형사 전문 조수진 변호사(법률사무소 더든든 대표)는 “전세 계약 당시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숨기고 계약을 체결했다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며 “반대로 계약 당시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이후 경제 상황이 악화돼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게 됐다면 이는 단순 보증금 미반환 채무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전세 제도의 구조도 이런 판단과 무관하지 않다. 전세 계약은 보통 2년 단위로 체결되고 갱신까지 포함하면 최대 4년 동안 거액의 보증금을 개인 임대인에게 맡기는 방식이다. 이 기간 동안 임대인의 재정 상황이 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

실무에서 가장 자주 문제 되는 서류는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다. 이 문서에는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 규모나 담보권 현황 등 권리관계가 기재된다.

예를 들어 다가구 주택에서 선순위 보증금이 ‘2명 1억 원’으로 기재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5명 5억 원’이었다면 임대인의 기망 행위로 판단돼 사기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선순위 보증금 등 위험 요소가 해당 문서에 기재돼 있었다면 임차인이 이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법원은 계약 당시 교부된 문서를 핵심 증거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순위 보증금 등 중요한 정보가 확인·설명서에 기재돼 있었다면 글씨가 작거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인지 가능했다’고 판단될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문서 내용과 달리 계약 과정에서 임대인이나 중개인이 사실과 다른 설명을 했다는 증거가 있다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 계약 당시 녹취도 증거…“설명 기록이 분쟁 좌우”


최근 전세 분쟁에서는 계약 당시 중개 과정이 핵심 쟁점이 되는 경우도 많다. 중개사가 어떤 설명을 했는지,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했는지가 책임 판단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조 변호사는 “계약 과정에서 중개인의 설명을 녹음해 두면 민사나 형사 절차에서 중요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며 “당사자 간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서와 달리 계약 과정에서 임대인이나 중개인이 사실과 다른 설명을 했다는 녹취나 문자 기록이 있다면 ‘말로 기망한 행위’로 인정될 가능성도 있다.

임대인이 정보를 숨긴 경우 중개사가 형사 공범으로 처벌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다만 중개 과정에서 확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면 민사상 과실 책임으로 손해액 일부를 배상해야 하는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계약 직전 다음과 같은 사항을 구두로 확인하고 기록을 남겨두는 것도 방법이다.

“제 보증금보다 먼저 변제받는 권리는 없는 상태인가요?”
“잔금 이후 추가 근저당 설정 계획은 없습니까?”
“보증보험 가입에 문제 없는 물건 맞습니까?”
“잔금일까지 등기 상태가 유지되는 조건이죠?”

조 변호사는 “최근에는 선순위 보증금 규모를 속이는 방식뿐 아니라 신축 빌라 시세를 부풀리거나 변제 능력이 없는 이른바 ‘바지 임대인’을 내세우는 조직적인 전세사기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등기부등본이나 신분증, 확정일자 등을 확인해도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 만큼 전세 계약 자체가 개인에게 거액을 맡기는 거래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가능하다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 주택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안전장치”라고 조언했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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