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폭풍의 언덕’은 2020년대 들어서만 국내에서 새 번역본이 9종 이상 출간됐다. 왼쪽 사진부터 윌북, 열린책들, 앤의서재 출간본. 각 출판사 제공
이 소설은 영국의 벽촌에서 나고 자라 짧은 생을 살다 간 에밀리 브론테(1818~1848)가 1847년 발표한 유일한 작품이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요크셔 황야의 저택을 배경으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격정적이고도 비극적인 사랑을 그렸다. 특히 최근 번역본들은 특히 캐서린의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면모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If all else perished, and he remained, I should still continue to be; and if all else remained, and he were annihilated, the universe would turn to a mighty stranger”라는 원문은 2023년 출판사 앤의서재가 ‘여성작가 클래식’ 시리즈로 선보인 판본(이신 옮김)에서 “만일 다른 모든 게 소멸하고 그 애만 남는다면 난 그래도 계속 존재할 수 있어. 만일 다른 모든 게 남고 그 애만 사라진다면 이 우주는 지극히 낯설어질 거야”로 옮겨졌다.
오랫동안 ‘자기 소멸적 사랑의 표지’로 읽혀왔던 문장이지만 “난 그래도 계속 존재할 수 있어”에 방점을 찍으며 해석이 달라진 것. 새 번역은 사랑으로 사라지는 인물이 아니라, 사랑 속에서도 자기 존재를 자각하는 인물로 캐서린을 재조명한다. 강조점의 이동은 인물의 성격까지 달리 보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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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윌북은 올해 초 에밀리와 샬럿 브론테뿐 아니라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막내 앤 브론테의 작품까지 함께 조명한 ‘브론테 세 자매 컬렉션’을 출간했다. 특히 앤 브론테의 자전적 경험이 반영된 ‘아그네스 그레이’는 상류층의 위선과 모순, 가정교사로 살아가던 여성의 삶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세 자매 가운데 계급 의식과 젠더 문제를 가장 예리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