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썸플레이스, bhc, 남양유업, 롯데카드, 오스템임플란트, 락앤락, 하나투어, 잡코리아…. 여러분이 알 만한 이 브랜드의 공통점은? 모두 주인이 사모펀드라는 점이죠. MBK파트너스가 대주주인 홈플러스처럼 말이죠. 시내버스와 쓰레기 소각장처럼 우리 생활과 관련이 큰 산업에도 사모펀드가 속속 진출하는데요.
사모펀드의 탄생지인 미국에선 최근 사모펀드가 어린이집과 병원, 요양원과 장례식장까지 뻗어나갔다고 하죠. 그리고 이렇게까지 사모펀드가 삶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미국에선 점점 이런 반응이 늘어갑니다. ‘(제품 또는 서비스가) 점점 나빠지고 있잖아. 이건 아무래도 사모펀드 탓인 것 같은데?’ 물론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건 아니고 다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그런 의심을 품을 만한 배경이 있는 건 사실이죠. 사모펀드 비판론을 들여다보겠습니다.
‘금융 자본주의 끝판왕’ 사모펀드는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게티이미지
*이 기사는 2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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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사모펀드 소유?
“당신은 사모펀드 소유 아파트에서 일어나, 사모펀드 소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사모펀드 소유 병원에서 진료받고, 사모펀드 소유 식당에서 저녁을 사서 집에 돌아와 사모펀드 운영 TV 방송국에서 지역 뉴스를 시청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최근 미국의 한 금융전문가가 “모든 게 사모펀드”라며 지적한 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더군요. 미국에서 사모펀드는 치과부터 세차장까지, 아주 광범위한 분야에 진출했습니다. 2025년 말 기준 사모펀드가 소유한 미국 기업 수는 약 1만3000개. 15년 전(2010년 6000여 개)의 두배가 넘는다고 하죠.
사모펀드는 기업을 인수한 뒤에도 본래 이름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서 소비자들은 어느 기업이 사모펀드 소유인지 잘 알지 못한다. 이런 기업의 경영을 좌우하는 이들은 숙련된 업계 전문가가 아닌 금융인이다. 게티이미지
그럼, 사모펀드는 왜 이런 산업에 투자할까요. 거기서 어떻게 돈을 벌까요. 이를 설명하기 전에 일단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 PEF)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는데요. 개념은 어렵지 않습니다.
-일단 공모(Public)가 아닌 사모(Private), 즉 돈 많은 소수정예 투자자만 조용히 받아 운영하는 펀드입니다. 국민연금 같은 연기금이나 국부펀드, 고액 자산가가 보통 투자자가 되죠.
-이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을 인수해서 경영권을 확보합니다. 인수 과정에서 상당한 대출을 일으키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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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모펀드 운용사로는 미국 블랙스톤, KKR, 칼라일그룹,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베인캐피털이 유명하고요. 한국 토종 사모펀드 운용사는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IMM프라이빗에쿼티가 대표적이죠.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뉴스1
이런 사모펀드 운용사의 목표는 단 하나, 투자자 수익 극대화입니다. 펀드 수익률이 높아질수록, 운용사가 받는 성과보수(초과수익의 20%)도 불어나는 구조이니까요. 그들은 오로지 자기네 펀드에 돈을 댄 투자자에 충성할 뿐입니다. 그게 맡은 역할인 거죠.
문제는 사모펀드의 이익이 해당 기업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단 겁니다. 때론 사모펀드엔 좋은 전략이 기업엔 해가 되는 경우도 있죠. 일반적인 상장사 투자자, 또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인데요. 이를 잘 보여주는 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모펀드 업계의 인수 방식 ‘차입매수(Leveraged Buyout, LBO)’입니다.
기업에 빚 떠넘기는 ‘금융의 마법’
1979년 미국 사모펀드 운용사 KKR이 자동차 부품업체 후다일 인더스트리를 3억9000만 달러에 인수합니다. 금융계는 화들짝 놀랐죠. 거래 규모가 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자금조달 방식이었는데요.광고 로드중
여기서 중요한 건 차입매수로 진 막대한 빚을 갚아야 하는 건 사모펀드가 아니라 인수된 기업이라는 점이죠. 사모펀드나 그 운용사는 대출에 대해선 책임이 없어요. 아니, 그게 말이 되냐고요?
1988년 KKR의 RJR 나비스코 인수를 축하하는 만찬장에서 KKR 공동 창업자인 조지 로버츠(왼쪽)와 헨리 크라비스(오른쪽)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79년 후다일 인더스트리 차입매수로 금융계에 충격을 줬던 KKR은 불과 9년 뒤 RJR 나비스코를 무려 250억 달러 가격에 차입매수 방식으로 인수했다. 이를 계기로 KKR엔 기업을 사냥해 해체한다는 의미가 담긴 ‘야만인’이란 별명이 붙었다. KKR 제공
놀라운 ‘금융의 마법’이죠. 사모펀드가 세운 페이퍼컴퍼니(특수목적회사, SPC)가 먼저 은행에서 거액을 빌려요. 담보는 ‘앞으로 인수할 기업의 자산과 미래 벌어들일 돈’이죠. 그럼 사모펀드는 자기 돈은 조금(약 20%), 대출은 많이(약 80%) 섞어서 기업을 인수해요. 인수가 끝나면 SPC와 인수 기업을 합병하죠. 그렇게 거대한 빚이 고스란히 인수한 기업으로 넘어갑니다.
차입매수(LBO)는 사모펀드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200억원짜리 사모펀드가 빚을 내서 1000억원짜리 기업을 산다면, 나중에 1200억원에만 팔아도 투자 수익률은 100%가 될 테니까요. 5배 레버리지 투자인 셈이죠.
그럼, 차입매수 방식은 인수된 기업엔 어떤 영향을 줄까요. 이와 관련한 아주 유명한 미국 사례가 있죠. 2018년 청산된 미국 장난감 전문점 ‘토이저러스’입니다.
토이저러스는 누가 죽였나
2005년, 58년 역사의 장난감 전문 소매점 토이저러스가 사모펀드 KKR과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에 팔립니다. 매각가는 66억 달러. 그중 사모펀드 자금은 13억 달러뿐이었고, 나머지 53억 달러는 빚(대출)이었죠. 전형적인 차입매수(LBO)였습니다. 이 빚을 떠안으면서 토이저러스 부채비율은 순식간에 30%에서 78%로 불어났죠.은행 이자로만 매년 4억~5억 달러를 갚아나가야 하는 상황. 장난감 팔아 번 영업이익의 80% 이상이 이자로 나갔습니다. 대출 원금은 당연히 갚지 못했고요. 장사가 잘돼도 손에 남는 게 없었습니다.
경영진은 이른바 ‘린(Lean) 운영’이라며 비용 절감을 위해 직원을 줄였습니다. 동시에 사모펀드 업계에서 ‘자산 효율화’라고 부르는 전략도 썼죠. ‘매각 후 임대(Sale-Leaseback)’입니다.
토이저러스 미국 본사는 2018년 파산 신청을 거쳐 청산됐다. 이후 2021년 WHP 글로벌이 브랜드권을 인수했고, 현재는 메이시스 백화점 등에서 영업을 재개했다. 토이저러스 제공
토이저러스는 미국 전역에 수백개 매장을 직접 소유했는데요. 인수 후 몇 달 만에 이를 부동산 회사에 매각했고요(사모펀드 투자자들은 이 돈으로 배당금을 챙김). 대신 토이저러스는 계속 장사를 하기 위해 부동산 회사와 장기 임대 계약을 맺습니다. 참고로 그 부동산을 매입해 임대한 건 토이저러스를 인수한 사모펀드 컨소시엄에 속한 보네이도였어요. 애초에 토이저러스가 보유한 부동산을 노리고 컨소시엄에 들어왔다고 봐야겠죠.
막대한 이자 비용에 매월 임대료 부담까지. 순이익이 거의 제로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요. 당연히 매장 리모델링이나, 온라인 플랫폼에 투자할 여력이 없으니 점점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그렇게 서서히 가라앉으며 체력이 고갈된 토이저러스는 결국 2018년 청산되고 말았죠. 토이저러스가 사모펀드에 인수된 이후 십수 년 동안 금융회사에 낸 이자 비용만 총 50억 달러에 달했다고 합니다.
미국인의 사랑을 받던 브랜드 토이저러스의 청산. 이 엄청난 실패로 토이저러스 투자를 주도한 사모펀드 운용사 KKR와 베인캐피털도 손해가 막심했을까요?
아니요. 미국 사모펀드 문제를 파헤친 책 ‘배드 컴퍼니(Bad Company)’의 저자 메간 그린웰에 따르면 두 회사 모두 손실을 보지 않았습니다. 펀드 투자금의 2%를 매년 꼬박꼬박 기본 수수료로 챙기고, 각종 경영·컨설팅 수수료까지 챙겼으니까요. “토이저러스의 경우, 대부분 차입매수와 마찬가지로 회사의 최종 운명은 가장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모펀드 운용사는 어쨌든 돈을 벌기 때문이죠. 유일한 위험이라면 수백억 달러가 아닌 수백만 달러만 벌게 될 수 있단 겁니다.”
게티이미지
토이저러스의 3만3000명 직원은 퇴직금을 한 푼도 챙기지 못한 채 직장을 잃게 됐습니다. 청산 과정에서 돈을 가장 먼저 돌려받는 건 담보가 있는 은행 대출이기 때문이었죠. 결국 5배 레버리지 차입매수의 고위험을 감수한 건 사모펀드 투자자나 운용사, 은행이 아니었습니다. 기업과 직원들이었죠.
고수익 전성기 지나가나
이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토이저러스 청산 이후 미국에선 대대적인 사모펀드 비판론이 일었습니다. 의회에선 사모펀드의 차입매수를 규제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죠. 물론 통과되진 않았습니다. 사모펀드 업계는 정치 기부금의 큰손이니까요.쏟아지는 비판 여론에 대응해 사모펀드 업계가 내세우는 방어막은 연금 수급자입니다. 미국의 대부분 공공연금이 사모펀드 투자에 참여하고 있으니까요. 2023년 인터뷰에서 피트 스타브로스 KKR 글로벌 사모펀드 공동대표는 인수한 기업 직원의 급여를 인상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죠. “교사 연금을 관리하면서 (인수한 기업) 직원의 급여를 올리는 건 교사를 희생시키는 겁니다. 윤리적이지 않고 우리 돈도 아니죠.”
어때요? 설득력이 있나요. ‘배드 컴퍼니’ 저자 메간 그린웰은 시니컬합니다. “그들(사모펀드 업계)은 한쪽에서 노동자 임금을 삭감하는 게 다른 쪽에서 노동자 은퇴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 회장 스티븐 슈워츠먼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기부자이기도 하다. 블랙스톤 제공 영상 화면캡처
아메리칸 컴패스의 이코노미스트인 오렌 캐스는 더 신랄하게 비판하죠. 그는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금융화(Financialization)는 사기”라며 사모펀드 업계에 맹공격을 쏟아냈습니다. “사모펀드에 인수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파산할 확률이 5~10배 높습니다. 사모펀드에는 (기업 파산이) 그저 사업상의 비용일 뿐이지만, 노동자와 지역 사회에는 재앙입니다. (…) 금융화는 노동자와 소비자, 경제, 사회 전체에 순수익을 창출하지 못합니다. 아무런 투자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경제학자와 언론은 ‘투자’라는 용어 사용을 중단해야 합니다. ‘투기’나 ‘도박’이 훨씬 적절한 표현이죠.”
물론 사모펀드가 높은 수익률을 제시한다면 투자자 입장에선 솔깃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랬었고요. 고수익이 곧 사모펀드의 존재 이유였는데요.
하지만 그 시대도 이제 끝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MSCI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5년 3분기까지 사모펀드 지수의 연평균 수익률은 5.8%로, S&P500 지수(11.6%)의 절반에 그쳤어요. 고금리와 기업공개(IPO) 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거죠. 높은 수익률이란 면죄부가 사라진다면, 사모펀드를 지탱할 힘은 무엇일까요. 사모펀드의 본고장 미국에서 먼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2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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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