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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상훈]억대 연봉 140만 시대, ‘공짜 증세’가 끝나간다

입력 | 2026-02-23 23:15:00

이상훈 경제부장


억대 연봉 앞에 ‘꿈’이라는 수식어가 붙던 때가 있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국내 임금 근로자 1100만여 명 가운데 상위 0.1%만 연봉 1억 원이 넘었다. 프로 스포츠 스타, 대기업 고위 임원 정도는 돼야 억대를 받던 때다. 하지만 이제 억대 연봉자는 140만 명을 넘어서며 전체 근로자의 8%가량으로 불어났다. 30여 년 새 인원수로는 115배 넘게, 전체 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는 8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은행이나 대기업에서는 과장급 이상, 잘나가는 정보기술(IT) 기업에서는 주니어 개발자도 억대가 많다.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긴 하지만 억대 연봉을 ‘꿈의 숫자’라고까지 부르는 시대는 지났다.

30년 새 115배 늘어난 ‘억대 연봉’

정부로서 고액 연봉자 증가는 반가운 일이다. 근로소득세는 소득이 높아질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세 구조다. 경제가 성장하고 물가가 올라 명목 임금이 상승하다 보니, 예전 같으면 이런저런 공제를 받은 뒤 중간 세율이 적용됐을 근로자들이 고율 구간에 자동 진입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과표 8000만 원 초과에 최고 세율(40%)이 적용됐고, 지금은 과표 10억 원을 초과해야 최고 세율(45%)을 매기다 보니 겉으로는 세율이 낮아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억대 연봉자가 100배 이상 늘어나는 흐름 속에서 큰 저항 없이 막대한 세수를 거뒀다.

실제로 지난해 근로소득세 수입은 역대 최대인 68조4000억 원에 달했다. 2015년 27조 원에서 10년 만에 2.5배(152.4%)로 불어났다. 기업 실적에 좌우되는 법인세나 부동산 경기를 타는 양도소득세가 흔들릴 때도 직장인의 유리 지갑은 든든한 재정 버팀목이었다.

문제는 저항 없는 근소세 확대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이다. 1990년대 6%대였던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은 1%대로 추락했다. 지난 30년처럼 억대 연봉자가 100배씩 늘어나며 나라 곳간을 채워줄 성장 시대는 끝났다. 성장 정체는 나라 살림 차원에서 세금을 많이 내줄 납세자의 유입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뜻한다.

소득의 하향 평준화와 세금의 상향 평준화가 맞물리면서 왕년의 고소득 근로자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됐다. 특히 과표 8800만 원을 넘어서는 순간 세율이 24%에서 35%로 뛰는 계단식 구조는 중산층 근로자에게 가혹한 ‘8800만 원의 벽’이 됐다. 정부는 하위 과표 구간을 일부 조정했다지만 물가와 명목임금 상승률을 고려하면 생색내기 수준이었다. 근로소득자 중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중이 30%대 중반에 달하면서 특정 구간 중산층에게 과도한 세 부담을 지우는 기형적 구조도 바뀌지 않고 있다.

저성장 시대, 조용한 증세는 안 통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명목 소득 상승에 따른 세수 증가에 기대어 과격한 증세 없이도 나라 살림을 건전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향후 잠재성장률 1% 시대에 이런 ‘조용한 증세’는 예전처럼 작동하기 어렵다. 중상위 근로자들이 유리 지갑으로 털리는 현상을 방치한다면 근로 의욕 저하와 조세 저항이라는 부메랑을 맞게 될 것이다. 소비자물가와 연동해 과표 구간을 조정하는 ‘물가 연동 소득세제’나 150만 원에 묶인 기본공제 기준 현실화 같은 논의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근소세 68조 원 시대’는 국가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자연스레 세수가 늘어나던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미래 먹거리를 찾는 노력과 함께 면세자 비중 축소, 조세 형평성 제고 같은 고통스러운 설계를 시작해야 한다. 확장 재정을 하려면 앞으로 비어갈 곳간을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고민도 솔직하게 논의해야 한다.



이상훈 경제부장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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