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리옹은 현대 프랑스 요리를 세계적 문화로 끌어올린 셰프 폴 보퀴즈의 도시다. 그는 ‘누벨 퀴진’을 통해 요리를 장인의 기술에서 창조적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했고, 반세기 넘게 유지된 미슐랭 3스타 기록으로 프랑스 미식의 상징이 됐다. 2018년 그의 장례식은 국가적 추모 속에 치러졌고, 2026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도시 전역이 그의 유산을 기리고 있다. 리옹 중심의 시장 ‘레 알 드 리옹 폴 보퀴즈’는 세계 식도락가들이 반드시 찾는 미식 성지다.
리옹 미식 문화의 뿌리는 ‘부숑’이라 불리는 전통 식당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실크 직공과 노동자들에게 푸짐한 식사를 제공하던 선술집에서 시작된 부숑은 돼지고기와 내장, 장시간 조리로 완성되는 소박하지만 힘 있는 요리를 특징으로 한다. 크넬 드 브로셰, 앙두예트, 살라드 리오네즈 같은 음식은 리옹 시민의 일상을 지탱해 온 생활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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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간에서 백종원의 요리는 시험대에 올랐다. 리옹의 미식 기준은 재료의 진정성과 조리의 정직함에 있다. 발효와 균형을 중시하는 한식의 접근 방식은 이 기준과 예상 밖의 접점을 만들어낸다. 부숑 요리가 노동자의 식탁에서 시작된 생활음식이라면, 백종원의 요리 또한 복잡한 장식을 덜어내고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지향한다.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주변 부숑들과의 경쟁 속에서 매일 메뉴를 바꾸는 전략이 프랑스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리옹은 공정한 도시다. 관광객의 호기심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이 음식의 가치를 결정한다. 촬영 기간 동안 현지 손님들은 솔직했다. 낯선 발효 향에 놀라다가도 조화로운 맛에 고개를 끄덕였고, 매운맛에 당황하다가도 균형 잡힌 풍미에 미소를 보였다. 음식은 설명보다 설득이 빠르다.
폴 보퀴즈의 유산이 살아 숨쉬고, 세계 최고의 식재료가 모이며, 밤이면 메르시에르 거리의 식탁 위로 삶의 온기가 흐르는 도시. 리옹은 정답을 쉽게 주지 않는다. 그러나 진심 어린 음식에는 시간을 들여 응답한다. 한식은 이제 소개돼야 할 음식이 아니라, 세계 미식의 식탁에서 당당히 경쟁하고 선택받는 음식이 되어 가고 있다. 리옹에 던져진 질문은 단순하다. “맛은 국경을 넘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은 이 방송에서 ‘한판’이라 이름 지은 주물 프라이팬의 온기 속에 이미 담겨 있었다. 본 아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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