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병원체에만 강한 기존 백신… 변이 등 발생하면 새로 만들어야 병원체 종류 무관한 ‘만능 백신’… 코로나 걸린 쥐 100% 생존 효과 코에 뿌리는 범용 백신 개발 땐… 코로나-독감-폐렴 등 동시 예방
백신은 인체에 병원체를 주입해 인체의 면역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항체를 만든다. 작은 사진은 코로나바이러스를 그린 일러스트. 표면의 돌기가 스파이크 단백질이다. 기존 백신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처럼 특정 병원체의 특정 부위만 겨냥하지만 일명 ‘만능 백신’은 면역 체계 자체를 활성화하므로 병원체 종류에 상관없이 효과를 보인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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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부터 코로나바이러스, 세균 감염, 심지어 알레르기 등 호흡기로 들어오는 위협을 한 번에 막는 ‘만능 백신’의 가능성이 동물 실험에서 확인됐다. 기존 백신과 달리 특정 병원체를 겨냥하지 않아 새로운 변이나 신종 바이러스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발리 풀렌드란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미생물학·면역학과 교수 팀은 코에 뿌리는 방식으로 다양한 호흡기 바이러스와 세균, 알레르겐(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막는 백신을 개발해 쥐 실험에서 효과를 확인하고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19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 병원체마다 새로 설계해야 하는 백신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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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백신은 병원체의 특정 부위를 겨냥해 설계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바이러스가 침투 경로로 사용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는 것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키면 백신이 겨냥한 표적이 달라져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매년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독감 바이러스에 맞춰 백신을 새로 접종받아야 하고 코로나19도 변이가 나올 때마다 새 백신이 개발돼야 한다.
● 코에 뿌려 코로나·독감 다 막는 ‘만능 백신’
연구팀은 백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특정 병원체를 겨냥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그 대신 감염이 일어났을 때 면역세포끼리 주고받는 신호를 흉내 내는 물질을 백신에 담았다.
사람의 면역 반응은 크게 적응면역과 선천면역으로 나뉜다. 적응면역은 면역세포인 T세포나 항체를 만들어 특정 병원체를 정밀하게 겨냥하고 한번 기억한 병원체를 오래 기억하는 게 특성이다. 기존 백신은 적응면역을 활용했다. 반면 선천면역은 감염 직후 수 분 안에 작동하며 병원체 종류를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선천면역은 범위가 넓지만 보통 며칠이면 사라지기 때문에 백신 개발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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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스탠퍼드대 연구에서 확인된 선천면역 활성화 과정을 인공적으로 재현한 백신을 개발했다. 선천면역세포 표면의 감지기를 직접 자극하는 물질과 T세포를 폐로 끌어들이기 위한 무해한 달걀 단백질을 섞어 백신을 만들었다. 코에 뿌리면 자극 물질이 먼저 선천면역세포를 깨우고 달걀 단백질에 반응한 T세포가 폐로 모인다. 폐에 모인 T세포는 신호 물질을 계속 분비해 선천면역세포의 활성 상태를 유지시키고 활성화된 선천면역세포는 다시 T세포를 자극한다. 두 면역 체계가 서로를 활성화하면서 방어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
연구팀은 백신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쥐의 코에 백신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투여했다. 일주일 간격으로 세 차례 투여한 뒤 다양한 호흡기 병원체에 노출시켰다. 백신을 투여받지 않은 쥐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자 체중이 크게 줄고 폐에 바이러스가 가득 차 상당수 죽었다. 백신을 투여받은 쥐는 체중 감소가 적었고 폐에서 바이러스 양이 700분의 1로 줄어 전원 생존했다. 보호 효과는 최소 석 달 이상 지속됐다.
연구팀은 코로나바이러스 외에 병원 감염을 일으키는 대표 세균인 황색포도상구균과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에도 백신을 시험했다. 두 시험에서 모두 약 석 달간 보호 효과가 지속됐다. 백신을 투여받은 쥐는 알레르기성 천식을 유발하는 집먼지진드기 단백질에 노출시켰을 때도 기도가 깨끗하게 유지됐다. 백신을 투여받지 않은 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기도에 점액이 가득 찬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번 연구는 병원체를 겨냥하지 않고도 선천면역과 적응면역을 동시에 활성화해 다양한 호흡기 감염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풀렌드란 교수는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면 5∼7년 안에 실용화할 수 있다”며 “가을에 코에 한 번 뿌려 코로나19와 독감, 세균성 폐렴, 알레르기까지 한꺼번에 막는 백신이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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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우 동아사이언스 기자 jjw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