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내란’ 1심 무기징역] “국회로 軍 보낸 순간 내란 시작… 목적 달성과 관계없이 중대범죄” 구체적 형량 놓고는 판단 엇갈려… 2심 ‘노상원 수첩’ 증거능력 쟁점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선한 모습. 서울중앙지법 재판 중계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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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1심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선고에 이어 “12·3 비상계엄은 내란”이라는 세 번째 법적 판단이 나왔다. 세 재판부 모두 ‘군대가 국회를 막아선 것’을 내란의 결정적 근거로 꼽았고, 내란이 실패했더라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다만 구체적인 형량은 각 재판부가 내란의 ‘기획성’을 얼마나 인정했는지, 30년 전 ‘전두환 전 대통령 판례’를 어떻게 해석했는지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 “국회로 군대 보낸 순간 내란 시작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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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 총리의 1심을 맡았던 이 재판장은 “12·3 내란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인 윤 전 대통령과 그 추종 세력에 의한 것으로서 성격상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한다”며 “이러한 형태의 내란은 이른바 ‘친위 쿠데타’”라고 했다. 이 전 장관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류 재판장 역시 군 투입 등을 두고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회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려는 국헌 문란의 목적 아래 이뤄진 행위”라고 지적했다.
실패한 내란도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법리도 세 재판부가 같았다. 이 전 장관 재판부는 “목적 달성 여부와 무관하게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했고, 윤 전 대통령 재판부도 “내란죄는 어떤 결과가 발생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위험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다만 윤 전 대통령 재판부는 “비상계엄의 지속 시간은 비교적 짧았고 군경과의 충돌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다”며 이를 윤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했다. 한 전 총리 재판부가 “인명 피해가 없고 금방 종료된 것은 맨몸으로 맞선 국민의 용기와 군경의 소극적인 대응 덕분이지 내란 가담자가 자제했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과 엇갈린다.
윤 전 대통령 재판부는 “국회 무력화와 이후 국정 운영에 대해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도 언급했다. 국회를 봉쇄할 계획을 세우면서 야근하는 국회 직원이 많다는 것조차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 지 재판장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결심한 시점도 선포 이틀 전인 12월 1일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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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내란 특검(특별검사 조은석)은 윤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하면서 그가 장기 독재를 꿈꾸며 1년여간 계엄을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2023년 10월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에 적힌 대로 군 사령관 인사를 낸 게 시작이라는 게 특검 시각이다. 반면 재판부는 이런 주장이 “막연하고 추상적”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획적 내란’이 아닌 ‘우발적 폭주’로 결론 내면서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한 셈이다. 이에 따라 항소심에서는 ‘노상원 수첩’의 증거 능력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세 재판부 모두 비상계엄이 내란이라고 판단했지만 양형은 엇갈렸다.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지 재판장은 계엄 당시 군 투입을 지적하면서도 “물리력의 행사를 최대한 자제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65세인 윤 전 대통령의 나이를 언급하며 “비교적 고령”이라고 했지만, 79세의 한 전 총리 1심을 맡은 이 재판장은 나이를 감형 사유로 언급하지 않았다. 또 한 전 총리 재판부는 “‘위로부터의 내란’인 12·3 비상계엄은 ‘아래로부터의 내란’인 과거 사례보다 위험하다”며 기존 판례를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 결과 한 전 총리는 전두환 정권의 2인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보다도 무거운 징역 23년을 선고받았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