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향수를 판매하는 ‘gettrumpfragrances.com’ 홈페이지 화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에 대해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왕정주의(Neoroyalism)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스테이시 고다드 웰즐리대 교수와 에이브러햄 뉴먼 조지타운대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미국 외교정책 기구는 관료 조직에서 영국 튜더 왕조나 합스부르크 가문과 같은 왕실 가족으로 변모했다”며 “미국의 외교 정책은 마치 궁정 파벌처럼 독점적 소수의 손에서 형성된다”고 했다.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일관성이 없고 비이성적으로 보이는데, 군주 개인의 권한이 막강했던 튜더 왕조에 가까운 왕실 통치 방식으로 해석해야 현실적 대응방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2차대전 이후 정립된 국제 질서는 ▲규칙 기반 ▲서방 동맹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국제질서를 간단히 뒤엎었다. 그가 신봉해온 ‘힘의 정치’로 국제 질서를 신뢰해온 전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7일 “국제기구가 미국의 국익에 반해 운영되고 있다”며 국제연합(UN) 기구 35개를 포함한 국제기구 66개에서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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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힘의 정치’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낸 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생포한 이후였다. 그는 지난달 8일 NYT 인터뷰에서 “나를 멈출 수 있는 오직 한 가지는 내 도덕성(morality), 내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의 ‘최고 사령관’으로서 휘두르는 권력에 어떤 견제 장치가 있냐는 질문에 “나에게 국제법은 필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 정부가 국제법을 준수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했지만, 미국에 제약이 되는 상황일 경우 결정권자는 자신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국제법을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이에대해 NYT는 “강대국이 충돌할 때 법과 조약이 아닌 국가의 힘이 결정 요인이 돼야 한다는 그의 세계관을 가장 노골적으로 인정한 발언이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중국과 같은 전통적인 적대국과는 기꺼이 협상을 체결하는 반면, 캐나다 덴마크와 같은 오랜 동맹국은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이나, 무역과 외교를 철저한 비즈니스 거래로 보는 방식 등도 전례없는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오른쪽)이 10월 29일 경북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했다. 뉴시스
●“측근에 이익 흘러가는 구조도 신왕정주의 단면”
NYT는 측근들에 이익이 흘러가는 구조도 ‘신왕정주의’란 분석을 뒷받침한다고 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미국의 번영’을 위한 국가적 이익이 아니라, 측근들의 사익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폴 싱어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CEO가 투자한 회사가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회사 자회사인 ‘시트고’를 인수, 베네수엘라 원유 정제·ּ유통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현지 언론에선 “폴 싱어의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마두로 축출의 가장 큰 승자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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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왕정 파벌의 역할을 하는 소수 그룹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등 가족을 비롯해 ▲대선 캠페인에 2억 9150만달러(약 4300억 원)를 기부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월가 거물’ 폴 싱어 CEO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을 이끌고 있는 부동산 거물 스티브 윗코프 백악관 중동 특사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등이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사실상의 과도통치를 선언한 가운데, 루비오 장관이 베네수엘라 ‘총독(viceroy)’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관세 전쟁’을 무기 삼은 무역 정책도 ‘신왕정주의’와 유사한 패턴을 따른다. NYT는 “베트남은 관세율 인하를 추진하며 트럼프 가문의 15억 달러 규모 골프장 건설을 신속 승인했다”며 “관세는 미국 제조업 부흥을 가져오진 못했지만, 국가와 기업들에게 헌금을 받아내는 매우 편리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메타, 애플 등 미국 주요기업들이 마치 왕에게 공물을 바치듯 막대한 기부금을 내는 것도 ‘신왕정주의’의 단면이다. 3억 달러 규모의 백악관 새 연회장 건립에는 메타, 애플, 록히드마틴, 리플 등 37개 기업이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NYT는 “한국 정부가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에 금관을 선물한 것도,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화려한 의식을 동원한 왕실 방문을 제안한것도 우연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2015년 ‘엠파이어(Empire)’라는 자신의 남성 향수 브랜드를 만들며 남긴 말을 덧붙였다. “모든 남자는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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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지 기자 j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