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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67배 땅 빼앗아 무상급식? 인도네시아가 ‘손절’ 당하는 이유[딥다이브]

입력 | 2026-02-12 10:00:00


요즘 글로벌 금융시장의 ‘문제아’로 떠오른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인도네시아. 경제는 견조하게 성장 중인데도, 증시와 외환시장은 심하게 요동치는데요. 해외 투자자들이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을 신뢰하지 못하는 게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죠.

국가 주도 성장을 통해 ‘강한 인도네시아’를 이루겠다는 프라보워 대통령의 약속. 국민들은 지지하지만, 글로벌 투자자들은 시대착오적이라며 고개를 젓는데요. 경고음이 울린 인도네시아 경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동남아 최대 경제 대국, 인도네시아에 대한 경고음이 금융시장에서 울리고 있다. 게티이미지


*이 기사는 2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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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에서 날아든 옐로카드
인도네시아 경제엔 최근 옐로카드 두 장이 연이어 날아들었습니다. 먼저 포문을 연 건 세계 최대 주가지수 산출기관인 MSCI. 1월 27일 성명에서 인도네시아를 신흥시장(Emerging Market)에서 프런티어 시장(Frontier Market)으로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어요. 인도네시아 상장사의 “불투명한 주주 구성과 담합 가능성”을 지적하며, 5월까지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못 박으면서 말이죠.

만약 신흥시장에서 탈락한다면? MSCI 신흥시장 지수를 추종해온 글로벌 펀드 자금이 줄줄이 빠져나가며 증시가 주저앉을 게 뻔합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화들짝 놀랐고, 대형 기관들은 미리부터 발을 뺐죠. MSCI 성명이 나온 지 불과 이틀 만에 시가총액 800억 달러(116조원) 증발해버렸는데요. 올해 초 사상 처음 9000선을 돌파했던 자카르타 종합지수는 순식간에 8000선으로 밀려납니다.

자카르타 종합지수의 최근 한달 추이. 구글 금융


그리고 MSCI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2월 5일. 이번엔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나섭니다. 인도네시아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건데요. 이날 인도네시아 통계청이 ‘2025년 5.11%’라는 경제성장률을 발표하며 좋았던 분위기에 무디스가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됐죠. 무디스는 “정책 결정의 예측 가능성 저하”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가뜩이나 MSCI 강등 공포가 퍼진 상황에서 무디스까지 일격을 날렸으니, 외환시장이 요동칠 수밖에요. 이날 환율은 장중 달러당 1만6900루피아에 육박했어요. 환율이 1만7000루피아를 찍었던 1998년 외환위기 수준에 다시 근접한 거죠. 인도네시아에선 ‘환율 1만7000루피아=외환위기 악몽’으로 통하기에 시장의 불안감은 커집니다.

인도네시아는 1997~1998년 루피아 환율이 달러당 2400루피아에서 1만7000루피아로 수직상승하며 외환위기를 겪은 적 있다. 그래서 환율 급등에 상당히 예민한 편이다. 다만 지금은 외환보유액이 충분하고, 경제 기초체력이 탄탄하다는 면에서 외환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보지만, 여전히 1만7000루피아는 환율의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게티이미지


그런데 인도네시아 경제 자체는 꽤 잘나가고 있거든요. 4년 연속 5%대 경제성장을 기록했고요. 올해도 정부가 5.4% 성장률 달성을 자신합니다. 실물 경제가 이렇게나 좋은데, 왜 금융시장에선 자꾸 시끄럽게 경고음을 울려대며 제동을 거는 걸까요.

호주국립대 코럴벨 아태연구소의 이브 워버튼 연구원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반적으로 프라보워 정권에선 국가 권력이 더욱 중앙집권화되고 약탈적인 양상을 보입니다. 민간 부문이 불안해하고 외국 투자자들이 겁을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스위스 면적 땅을 국유화하다
인도네시아의 독재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프라보워 대통령. 1998년 외환위기로 수하르토 정권은 무너졌고, 그는 군에서 불명예 전역한 뒤 해외로 망명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어요. IMF를 포함한 외세를 향한 그의 반감은 뿌리가 깊은데요.

그래서일까요. 프라보워 대통령은 외국 자본에 대한 거부감이 강합니다. 2024년 12월 취임 후 그가 ‘강한 인도네시아’를 주창하며 줄곧 강조해온 건 해외투자 유치가 아닌 ‘자급자족’이죠. 외국 자본에 소중한 천연자원을 뺏길 수 없다,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식의 논리인데요.

그가 자급 경제라는 목표를 위해 내놓은 파격적인 정책들이 여러가지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지난해 벼 수확 현장에서 콤바인을 운전 중인 프라보워 대통령. 프라보워 대통령 공식 SNS


①쌀과 설탕 수입 중단

“2026년엔 소비용 쌀과 설탕, 사료용 옥수수 수입이 한톨도 없을 겁니다.” 인도네시아 농업부 장관이 얼마 전 한 말이죠. 프라보워 대통령이 취임 직후 내린 ‘식량자급’ 명령에 따라 지난해 생산을 늘려 재고를 충분히 쌓아놨고, 그 결과 올해부턴 주요 전략 식량 수입 물량이 제로가 될 거라 선언한 건데요.

아니, 식량 자립은 좋은데 그렇다고 굳이 “수입 제로” 선언까지 하는 건 너무 오버 아닐까요. 날씨에 따라 수확량은 들쑥날쑥하기 마련인데 말이죠. 이러다 자칫 식량 인플레이션 오는 거 아니냐는 걱정도 벌써부터 나옵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쌀을 구매하지 않아서, 세계 쌀값이 하락했다”며 성공적 정책이라 자화자찬 중인데요. 팩트체크를 하자면, 세계 쌀값이 떨어진 건 인도네시아 때문이 아니라 인도의 쌀 수출 재개 덕분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팜유 생산량, 수출량 1위 국가이다. 게티이미지


②경유에 팜유 50% 혼합 의무화

식량 자급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에너지 자립이죠. 이를 위해 프라보워 대통령은 B50, 즉 경유와 팜유를 50%씩 섞어 사용하는 걸 의무화한다는 계획을 지난해 밝혔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팜유 생산의 60%가량 차지하는 1위 생산국이자 수출국이잖아요. 그러니 팜유의 연료 사용량을 대폭 늘려서 경유 수입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발상이었죠.

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오겠죠. 그럼 식용유는 어쩌지? 에너지 자립하려다 먹을 식용유가 모자라는 상황이 닥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고요. 또 팜유 생산 늘린다고 숲을 베어 팜 농장을 만들면, 그게 과연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느냐는 논란도 일었는데요.

다만 애초 프라보워 대통령이 2026년 시행한다고 밝혔던 B50 의무화 정책은 최근 내년 이후로 보류됐습니다. 국제 팜유 가격이 아직은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는군요.

막대한 정부 자산을 관리하는 국부펀드 다난타라는 프라보워 정부의 중요한 자금줄 역할을 하게 된다. 다난타라 제공


③불법 농장·광산 대대적인 국유화

식량이든 에너지든 자립하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게 땅이죠. 쌀농사, 사탕수수농사, 팜농사 등을 더 많이 지어야 할 테니까요. 그래서 프라보워 정부는 대대적인 땅 확보에 나섰습니다. 어떻게? 압류해서 국유화하는 겁니다. 환경 규제를 어겼거나 부패 혐의에 연루된 불법 자산이란 딱지를 붙여서 말이죠.

이런 식으로 지난해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 소유가 된 땅이 얼마나 되느냐. 놀라지 마세요. 자그마치 400만 헥타르. 서울 면적의 67배, 남한 전체 영토의 약 40%에 달합니다.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북도를 합친 것보다 더 넓고요. 스위스 국가 전체 면적과 맞먹죠. 외국 자본이나 재벌기업이 보유했던 돈 되는 알짜 농장과 광산이 속속 정부에 넘어갔습니다.

이런 땅과 지분, 광산채굴권은 누가 관리할까요. 다난타라(Danantara), 지난해 2월 설립된 인도네시아 국부펀드로 대통령 직속기관인데요. 인도네시아의 핵심 7대 국영기업과 민간에서 압류된 자산을 모두 관리하는 거대한 지주회사 형태입니다. 그 운영은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이뤄지죠.

다난타라가 프라보워 정부 핵심 사업(무상급식, 군 현대화)의 돈줄 역할을 하게 될 거란 전망은 파다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재정적자를 엄격히 제한하는데(GDP의 3% 이내), 다난타라를 통하면 규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다난타라는 정부 예산안에선 빠져 있는 일종의 ‘장부 외(Off-balance sheet)’ 지갑이니까요.

지난달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특별연설 중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프라보워 대통령 공식 SNS


다난타라에 몰아주기 위한 대대적인 자산 국유화 물결. 투자자들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데요. 인도네시아 최대 금광인 마르타베 광산 사례를 볼까요. 지난해 12월 환경규제를 위반해 홍수를 야기했단 이유로 정부는 마르타베 금광을 포함한 28개 기업의 허가를 취소했고요. 최근엔 국부펀드 다난타라가 마르타베 금광을 인수해 운영하는 걸 검토 중이란 보도가 나왔어요. 금광의 소유주인 홍콩 기업 자딘 매티슨엔 투자자들의 문의가 쏟아졌고요. 자딘 매티슨 측은 “공식 통보 받은 바 없다”며 당혹스러워했죠.

총칼 들고 협박해서 강탈한 건 아니지만, 이건 사실상 정부가 인허가권을 무기로 기업 자산을 빼앗는 것 아닌가요? 갑자기 이렇게 계약이 휴짓조각이 되어버리면 어쩌란 걸까요. 이거 어디 불안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사업할 수 있을까요. 이게 바로 무디스가 지적한 “예측 가능성 저하”의 대표 사례인데요.

하지만 프라보워 대통령은 불법 농장·광산의 압류가 법치주의 수호를 위한 노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지난달 다보스 포럼 특별연설에서 그는 대대적인 국유화가 “탐욕 경제”에 맞서 “부패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일”이라고 강조했죠. 자신은 “가난하고 약한 인도네시아 사람”을 위해 “부패, 조작, 부정행위와 맞서 싸우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79.9%의 압도적 지지율
프라보워 대통령이 추구하는 ‘국가 주도의 자급자족 민족주의’ 노선. 왜 전 세계 투자자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지 아시겠나요. 인도네시아 경제가 잘 나가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룰이 깨지면 곤란하다는 경고음이 나오는 상황인데요.

그럼 흔들리는 주가와 환율 탓에 민심도 흔들리고 있을까요. 그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이를 통쾌하게 여기고 있죠. 그동안 법을 어기며 숲을 파괴하고 이익을 챙겨온 부도덕한 기업에 철퇴를 내렸다고 보기 때문인데요. 특히 마르타베 금광 사례처럼 외국자본 소유 자산을 건드릴수록, 민족적 자부심은 고취됩니다. ‘프라보워는 자본의 눈치 보지 않고 진짜 부패와 싸우는 리더’라며 열광하죠.

최근 여론조사(2월 8일 발표)에서 프라보워 대통령 지지율은 무려 79.9%. 취임 1년이 지났는데도 이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특히 젊은층과 농촌지역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프라보워 대통령의 대표 대선공약이었던 무상급식이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학생과 유아, 임신부 등 총 8290만명에 매일 한끼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목표다. 올해 무상급식 예산은 335조 루피아(29조원)로, 전체 정부 예산의 10%에 달한다. 프라보워 대통령 공식 SNS


물론 이런 높은 인기엔 프라보워 대통령의 대표 정책인 무상급식도 한몫했죠. 지난해 프라보워 정부가 무상급식 공약 이행에 나서면서, 인도네시아에서 재정부담을 둘러싼 논쟁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던 건 이미 전해드린 바 있는데요.

프라보워 정부가 속도전을 펼치면서 무상급식은 예상보다 빠르게 확대됐고요. 현재 수혜자가 총 6000만명(학생, 영유아, 임신부가 대상)에 달합니다. 올해 말이면 최종 목표인 8290만명 전원에게 급식을 제공할 거라는군요.

‘서민 자녀에게 밥을 먹이는 대통령’이라니. 국민들은 열광합니다. 낮은 급식단가(1끼에 874원) 때문에 식단이 부실하단 지적이 나오지만, 그것조차 아쉬운 가난한 국민이 워낙 많으니까요. 또 다난타라가 국유화한 농장들은 앞으로 무상급식 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역할을 할 예정입니다. 국유화 역시 애들 밥 먹이는 데 도움이 되니, 환영할 만한 일인 거죠.

해외 투자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프라보워의 정책들이 국내 여론 공략엔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입니다. 금융시장에서 뭐라고 하든 프라보워 대통령이 ‘마이 웨이’를 고집하는 이유인데요. 과연 프라보워 대통령은 이 경고음을 무시한 채 ‘자립의 기적’을 쓸 수 있을까요. 아니면 1998년의 악몽을 연상시키는 환율 1만7000루피아 파도에 휩쓸리고 말까요.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2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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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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