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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에서 만난 ‘한일 현대미술 80년’의 명암[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입력 | 2026-02-10 23:00:00


재일동포 3세 우히와 일본계 스위스인 크리스티안이 여러 장소를 오가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담은 작품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드 무비)’. 요코하마미술관 제공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마치노아카리가 도테모키레이네(거리의 불빛이 정말 아름다워요), 요코하마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1980년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인들이 내게 가수 이시다 아유미의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를 친근하게 불러 준 기억이 떠오른다. 항구도시의 이국적 정취와 흔들리는 여자의 마음을 담은 가사는 당시 서울의 사회적 분위기와 어딘가 맞지 않아 의아했다. 특히 내가 어린 시절 유행했던 노래였기에 과연 당시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도시 요코하마는 어떻게 비치는 걸까 궁금함이 들었다.

현재 요코하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항상 옆에 있으니까 일본과 한국, 미술 80년(いつもとなりにいるから 日本と韓国, ア-トの80年)’ 전시를 보기 위해 요코하마를 찾았다. 화강암으로 웅장하게 지어진 미술관 전시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많은 젊은 관객들의 모습이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재일동포 미술의 역사에 조용히 빠져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전시의 깊이와 함께 한국 문화에 다가가는 시대의 뚜렷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전시는 ‘사이에서: 재일조선인의 시선’, ‘백남준과 일본 예술가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넓어진 길’, ‘새로운 세대, 새로운 관계’, ‘함께 살아가다: 예술 너머의 연대’ 등 총 5부로 이뤄졌다. 그중 한국에서 접하기 힘든 1부와 5부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1부에서 재일동포와 결혼한 뒤 1959년 이후 ‘귀국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건너간 일본 여성들을 기록한 사진과 영상 프로젝트인 하야시 노리코(林典子)의 ‘sawaswato’를 한참 보게 됐다. 특히 미나가와 미쓰코(皆川光子) 씨가 노래 ‘이 길’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다시 일본 땅을 밟을 수 없다는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먹먹했다.

5부에서는 무사시노미술대와 총련계 대학인 일본 조선대가 함께한 프로젝트 ‘돌연, 눈앞이 열리고’가 소개됐다. 2011∼2015년 담장 하나로 갈라진 두 대학 사이에 다리를 놓는 과정이 기록된 작품이다. 두 학교의 미대생들이 서로에게 다가가 수차례 만남을 이어가며 상대를 인식하고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크고 작은 난관을 넘으며 결국 다리를 완성해 가는 여정은 관람객에게 큰 에너지와 작은 희망을 안겨줬다. 대학 졸업 이후 작가로 성장한 이들이 이어가는 작품까지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마지막 작품인 다나카 고키(田中功起)의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드 무비)’은 로드 무비 영화를 네 개의 영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재일동포 3세 우히와 일본계 스위스인 크리스티안이 여러 장소를 오가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담았다. 두 사람은 자신의 성장 과정을 이야기하고, 재일동포를 향한 차별의 역사를 배워간다. 이번 전시 포스터의 메인 이미지는 이 영상에서 가져왔다. 1923년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 학살 사실을 알게 된 뒤, 아라카와(荒川) 강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우히는 이 순간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이라고 말한다. 다리가 보이는 곳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누군가 ‘옆에’ 있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히미노 민용(日比野民蓉) 씨는 일본과 한국을 생각할 때 한국인과 일본인, 재일동포 누구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는 재일동포에게 갈등과 분열의 시작이었다. 모두의 사정이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처지는 서로 다르고 복잡하다. 여러 이유로 한국에서 전시할 수 없는 작품이 많아 이번에는 요코하마에 와 직접 봐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도 열린다. 5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진행되는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현재까지 한일 미술’전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개최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한국 전시에서 모든 작품을 볼 수는 없다. 정치 및 사회적 이슈로 절반가량의 작품만 전시될 예정이다.

나는 한국에 오기 직전까지 요코하마의 고토부키(寿)정이라는 동네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고토부키정은 고도 경제 성장기에 국제무역의 거점 항구도시 요코하마에서 내몰린 사람들, 갈 곳을 잃은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다. 이곳에서 방치된 아이들과 함께 놀고 공부했다. 환히 빛나는 등불 아래에는 어둠이 생기고, 그 어둠은 어디보다 깊다. 그 양쪽이 거울처럼 역사를 비추는 곳이 내게는 요코하마다. 이곳은 내게 아픔을 포함해 많은 놀라움과 배움을 안겨줬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통점을 찾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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