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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인문학으로 세상 읽기]환영 좇는 ‘보바리즘’ 위험… 발 디딘 현실 직시해야

입력 | 2026-02-09 23:06:00

소설 ‘보바리 부인’ 여주인공 엠마
낭만과 다른 현실에 불륜 저지르다
수많은 빚 끌어쓰고 파멸에 이르러
‘진짜 좋아하는 것’ 무엇인지 고민… 현실의 삶에 단단히 뿌리 내려야



소설 ‘보바리 부인’을 원작으로 한 영화 ‘마담 보바리’(2015년)의 한 장면. 보바리 부인은 낭만을 선택했으나 낭만이란 추상은 유령처럼 떠다니는 환영에 불과했다. 영화사 진진 제공


손글씨를 쓰시나요? 뭐든지 빠르게 지나가는 시대에 한 자 한 자 눌러쓰는 손글씨는 시대를 역행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의 속도가 손의 움직임에 비해 빨라서 이내 글씨 모양은 뭉개지고 가슴은 답답해집니다. 쓴 글을 읽어보면 글의 내용보다 악필에 가까운 결과물에 먼저 실망합니다.

그럼에도 손으로 써야 제맛인 것들이 있습니다. 편지나 카드는 물론이고 감정을 쏟아내고 싶을 때는 손글씨만 한 게 없습니다.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한다’고 잘 쓰기 위해 좀 더 좋은 펜들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만년필을 쓰게 됐습니다. 어쩐지 글씨가 명필같이 느껴졌던 기분을 잊지 못해 지금은 취미가 필사이고, 만년필입니다.

만년필을 좋아하다 보면 작은 디테일 하나의 차이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게 보입니다. 그래서 점차 많은 펜을 사들이게 됩니다. 다른 취미도 비슷할 것입니다. 소유의 풍요 속에서 쇼핑을 좋아한 건지, 취미의 본질을 좋아한 것인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이럴 때 ‘진짜 좋아하는 것’을 섬세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합니다.

● 낭만을 선택했으나 파멸한 보바리 부인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무엇을 정말 좋아하는가를 생각하면서 같이 읽으면 좋을 책으로 ‘보바리 부인’(저자 귀스타브 플로베르)을 추천합니다. 아직은 쌀쌀한 겨울 끝에서 보바리 부인의 화끈한 사랑과 처절한 죽음을 지켜보며 ‘좋아하는 것’과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좋아하고 있으며, 어떤 것들을 욕망하고 있을까요.

보바리 부인의 주인공 ‘엠마’는 소설을 즐겨 읽으며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우연히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시골 의사 샤를 보바리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그녀는 샤를을 선택하고 ‘보바리 부인’이 됐습니다. 그녀의 사회적 계급도 정해진 것이지요. 안전한 보바리 부인이라는 사회적 타이틀 아래에 펼쳐진 그녀의 인생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습니다. 다정한 남편과 낭만적인 가정, 그리고 귀여운 아들을 꿈꿨지만, 촌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남편과 평범한 시골집, 그리고 딸을 출산합니다.

혹자는 낭만주의의 죽음을 해부한 사실주의 작가의 글이라는 격한 표현도 쓰지만, 단단히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내야 하는 현실은 보바리 부인에게 짜증만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됩니다. 예상하신 바와 같이 그녀는 2명의 남자 친구와 불륜을 저지르고 수많은 빚을 끌어다 쓰며 결국 파멸하고 맙니다.

그녀의 선택은 ‘낭만’이었으나 낭만이란 추상은 유령처럼 떠다니는 환영에 불과합니다. 탐욕은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빠져드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탐욕은 이성적으로 옳지 않음은 알고 있으나 순간적으로 ‘갖고 싶다, 저걸 하고 싶다, 먹고 싶다’는 감정에 지고 맙니다. 이런 선택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만나게 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녀가 사랑했던 것은 사랑의 감정이었을 뿐 감정이 지나고 난 뒤 남는 것은 허무였습니다.

남편 샤를은 어떻게 됐냐고요. 아내에게 속고, 아내 때문에 파산하는 안쓰러운 캐릭터이지만 그 역시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 직시하지 않습니다. 안짱다리 수술 실패 후 의족을 한 환자만 보면 도망간 것처럼 그는 현실에서 도망을 갑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도, 아내의 현실도 직시하지 않습니다. 엠마와 샤를은 과연 무엇을 좋아하고 선택한 것일까요. 현실에서 발을 떼고 환영만 좇은 것은 아닐까요.

● 자신을 분수 이상 생각하는 ‘보바리즘’

‘보바리즘’은 인간이 자신의 환영을 좇아 자기를 속이고 자기를 실제와는 다른 분수 이상의 존재로 생각하는 정신 작용을 일컫는 말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쥘 드 고티에가 소설 보바리 부인의 여주인공 성격에서 따서 지은 것입니다. 보바리즘과 멀어지려면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땅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진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본질을 날카롭고 뾰족하게 예리하게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짜 좋아하는 대상을 파악하면서 욕망을 내려놓고 제대로 선택을 해야 합니다.

휴대전화 속 세상을 보며 몇 초마다 바뀌는 영상 속에 떠다니고 있는 건 아닌지, 만년필을 좋아한다면서 이것저것 쇼핑하는 맛에 중독된 것은 아닌지, 현실이야 어쨌든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넘겨 버린 것은 없는지 멈춰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적어도 보바리 씨나 보바리 부인처럼은 되지 않도록 말이죠.

소설 속 주인공이 나를 대신해 파국을 맞이했으니, 이쯤 정신을 차리고 현실의 삶에서 진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하렵니다. 동영상과 쇼핑을 멈추고 만년필을 들어 글씨를 쓰고 기록을 남길 겁니다. 이제 겨울이 가고 있으니까요.



조현정 세종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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