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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스키 여제’ 린지 본, 십자인대 파열 투혼도 멈췄다

입력 | 2026-02-09 04:30:00

[26 밀라노 겨울올림픽]
알파인 女활강서 깃대 충돌 탈락… 들것 실려 응급헬기로 병원 이송
개막 일주일전 부상 입고도 출전
“올림픽 오기까지가 하나의 도전”





‘스키 여제’ 린지 본(미국)이 8일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 알파인 스키 여자 활강 경기 도중 깃대에 부딪혀 균형을 잃고 있다. 무릎 십자인대 파열도 막지 못한 본의 마지막 올림픽 메달 도전은 불의의 사고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코르티나담페초=AP 뉴시스


쓰러진 ‘스키 여제’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고통과 절망이 뒤섞인 신음을 내뱉으며 흐느끼는 린지 본(42·미국·사진)의 모습에 관중석은 침묵에 빠졌다. 전방 십자인대 파열 진단을 받고도 올림픽 출전을 강행한 그의 마지막 금메달 도전은 13초 만에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본은 8일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토파네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 알파인 스키 여자 활강에서 13번째 주자로 나섰다. 첫 번째 코너를 통과한 본은 두 번째 곡선 주로에서 오른팔이 기문에 부딪힌 뒤 균형을 잃고 넘어져 설원을 뒹굴었다. 의료진이 긴급 처치를 하면서 본의 상태를 확인하는 사이 ‘닥터 헬기’가 도착했다. 본은 들것에 실려 헬기로 이송됐다. 그사이 대회 진행이 약 20분간 중단됐다. 본은 ‘DNF’(Did Not Finish·완주를 하지 못함)로 실격 처리됐다.

활강 경기 중 사고를 당한 린지 본. 2026.02.08 코르티나=AP 뉴시스

안방 같은 코스에서 벌어진 사고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본은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서만 통산 12승을 거뒀다. 코르티나담페초는 그가 FIS 월드컵 첫 승을 거둔 곳이자 2015년 당시 월드컵 여자 신기록인 63승째를 달성한 곳이다. 그는 티타늄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선수 복귀를 선언하며 “코르티나담페초가 아니었다면 올림픽 복귀를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사고를 목격하고 침묵에 빠진 관중석 모습. 코르티나담페초=AP 뉴시스

브리지 존슨(30)을 비롯한 미국 대표팀 동료들과 성조기를 들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고개를 떨궜다. 1분36초10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존슨은 시상대에서 감정이 북받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장내 아나운서는 “이것도 이 스포츠의 일부다. 그녀는 다친 무릎을 안고 이곳에 왔고 이 종목을 사랑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를 사랑한다.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한 린지 본, 코르티나의 여왕이여, 당신이 그리울 것”이라고 말했다.

본은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 활강에서 금, 슈퍼대회전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스타덤에 올랐다. 2014년 소치 대회에는 부상으로 불참했으나 4년 뒤 2018년 평창 대회에서 다시 활강 동메달을 목에 걸며 건재함을 알렸다.

활강 경기 중 사고를 당한 린지 본. 2026.02.08 코르티나=AP 뉴시스

이듬해 은퇴를 선언했던 본은 고질적인 무릎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2023년 오른쪽 무릎에 티타늄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 통증이 사라지자 2024∼2025시즌 설원으로 돌아왔다. 본은 이번 시즌 월드컵에서 우승 2회, 준우승 2회, 3위 3회 등의 성적을 거두며 금메달 후보로 부상했다. 그러나 올림픽 개막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달 30일 스위스 크랑몽타나에서 열린 FIS 알파인 월드컵 때 점프 후 착지 과정에서 넘어져 왼쪽 전방 십자인대 파열 및 반월상 연골 손상 진단을 받았다. 헬기로 이송된 본은 올림픽에 정상 출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헬기로 이송되는 스키 여제 린지 본. 2026.02.08 코르티나=AP 뉴시스

그래도 본은 포기하지 않았다. 본은 7일 인스타그램에 “내일은 마지막 올림픽 활강이다. 좋은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것만은 약속할 수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나는 이미 승자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계속해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기까지의 여정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었고 처음부터 나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모두가 왜 다시 도전하느냐고 물을 때 본의 답은 항상 간결했다. 특별한 ‘의미’나 ‘관심’ ‘돈’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스키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본은 “나는 보통 가장 불리한 상황에 놓였을 때 내 안의 최고의 것을 끌어낸다”며 각오를 다졌다.

본은 하루 전 연습 주행에서는 보호대를 차고 등장해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화 같은 그의 도전은 불의의 사고로 안타까운 결말을 맞게 됐다. 알파인스키 올림픽 최고령 메달 기록도 함께 무산됐다. 부상을 안고 출전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시각에 대해 요한 엘리아슈 FIS 회장(64·스웨덴)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이다.”



한종호 기자 hj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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