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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전 백제 ‘가로피리’ 나왔다…삼국시대 관악기 실물 첫 발굴

입력 | 2026-02-05 15:03:00

부여 관복리 유적서…국가재정 등 기록 목간 329점도




70%가량 남아 있는 백제 가로피리 몸통을 토대로 복원 및 완성한 가로피리(횡적·橫笛) 재현품(위). 국악기 중엔 소금(小笒)과 크기 및 형태가 유사하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약 1400년 전 백제 왕궁에서 연주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로피리(횡적·橫笛)’가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출토됐다. 고구려와 신라를 통틀어 ‘삼국시대 관악기’가 실물로 발견된 건 처음이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5일 언론공개회를 열고 “2024년부터 2년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사비(부여)에 도읍을 둔 7세기 백제 왕궁터에서 가로로 부는 피리 1점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 피리는 지난해 3월 백제 왕과 신하가 국정을 논의하거나 국가적 행사를 열던 조당(朝堂) 건물터 인근 화장실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발견됐다. 황색 대나무로 만들어졌고, 몸통 일부는 사라져 전체의 70%가량(22.4cm)이 남아 있다. 탄소연대측정 결과 568~64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소 측은 X선 조사를 바탕으로 이 출토품을 “취구(吹口·입김을 불어넣는 구멍) 끝이 막힌 가로피리 형태”로 보고 있다. 국악기 중엔 소금(小笒)과 크기 및 형태가 유사하다. 소금은 대금이나 중금에 비해 길이가 짧아 음역대가 높은 가로피리. 다만 소금보다는 취구가 작고, 내부 지름은 살짝 넓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3차원(3D) 측량 기술과 수학적 프로그램 등을 통해 출토된 가로피리 조각의 원 모습을 재현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등을 통해 나머지 몸통 30%를 되살린 가로피리 복원판도 선보였다. 현장에서 이 재현품을 시연해 본 김윤희 연주자(부여군충남국악단)는 “소금보다 한음 반 정도 높은 음역대를 갖고 있다”고 감상을 전했다. 고대 악기 전문가인 정환희 국립남도국악원 학예연구사는 “현재 조선시대 때 모습으로 남아 있는 소금에선 날카로운 음색이 강조되는 것과 달리, 백제 가로피리는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며 “과거 궁중 음악에서 주선율을 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백제 피리는 그동안 옛 문서와 그림을 통해서만 존재가 짐작됐다. 백제 유민이 673년경 제작한 불교 석상인 국보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에는 한 악사가 연꽃 위에서 가로피리를 부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238년)에 “5년 봄 정월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낼 때 북과 피리를 사용했다(五年 春正月 祭天地 用鼓吹)”는 기록도 있다.

백제 후기의 도읍 사비였던 충남 부여의 관북리 유적에서 지난해 가로피리가 출토됐을 당시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가로피리의 발굴은 한반도 고음악 연구에도 활력을 더할 것으로 전망된다. 1990년대에 대전 서구 월평동 유적에선 백제 현악기 파편이, 그보다 몇 년 앞서 광주 광산구 신창동 유적에선 백제 이전 연맹체인 마한(馬韓)의 타악기 및 현악기 파편이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두 사례 모두 원형이 대부분 소실돼 실제 소리나 주법 등을 파악하긴 어려웠다. 황인호 부여문화연구소장은 “이번 발견은 ‘백제의 소리’를 실증적으로 복원하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연구소는 이날 관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뭇조각) 329점도 함께 공개했다. 백제가 웅진(현 공주)에서 사비로 천도한 538년 직후에 만들어진 목간들로, 국가재정과 관등·관직 등이 기록돼 있다. 한반도 유적에서 이 정도 수량의 목간이 한꺼번에 나온 건 처음이다. 일본에서 만든 한자로 알려졌던 ‘전(畑)’ 자가 적힌 목간도 확인됐다.

오현덕 학예연구실장은 “기존 인식과 달리 백제의 문자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일본의 고대 문자 문화 성립에도 깊게 연관됐을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부여=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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