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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신광영]고소득 전문직부터 대체하는 AI

입력 | 2026-02-04 23:18:00


“사건 기록을 보고 고소장을 작성해보세요. 챗GPT보다 잘 써야 통과입니다.” 요즘 로펌 채용 면접장에선 신입 변호사들이 인공지능(AI)과 일전을 치러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로스쿨을 갓 나온 변호사보다 AI가 일을 더 잘한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판례 분석은 물론이고, 변호인 의견서나 계약서 작성까지 웬만한 건 AI가 척척 해준다는 것이다. 로펌 업무에 특화된 AI 서비스까지 나오고 있어 월 500만 원에 초짜 변호사를 고용하느니 월 10만 원대 구독료로 AI를 쓰는 게 낫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에선 “앞으로 법조계는 진로로 정하지 말라”는 말이 충격을 안겼다. 다름 아닌 미 노동통계국장의 경고다. 로펌들이 기본 업무를 AI에게 맡기고 있어 더 이상 신입 변호사를 뽑지 않는다는 것이다. ‘앤스로픽’ 같은 AI 기업들도 계약서 검토나 소장 작성 등 변호사 기능을 탑재한 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다.

▷회계사 업계는 ‘AI 비상사태’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규칙에 따라 데이터를 정리, 분석하는 회계사 업무는 빅테이터에 강한 AI가 특히 위력을 발휘하는 분야다. 예전엔 주니어 회계사 여러 명이 달라붙어 하던 일도 베테랑 회계사 1명과 AI의 조합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전문직도 초임 땐 선배의 손발 역할을 하며 일을 배우는데 그런 조수 업무는 AI로 충분해 신입이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이다. 그 결과 국내 ‘빅4’ 회계법인에서 지난해 채용한 신입 회계사는 몇 년 새 30% 넘게 줄었다.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실무교육 받을 곳을 구하지 못한 청년 회계사들은 정부에 선발 인원을 줄이라며 요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의사 역시 AI 시대에 안전한 직업이 아니다. 엑스레이 등 영상 판독에선 AI가 의사보다 정확하다는 평가가 많고 빅테크들은 건강 관리를 도와주는 ‘헬스 AI’를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미국 유타주에선 AI가 의사 대신 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했더니 500건의 응급 사례에서 인간 의사의 처방과 99% 일치했다고 한다. 게다가 환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AI가 의사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있어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AI의 일자리 습격은 의외로 선망받는 고소득 전문직에서 먼저 벌어지고 있다. 기업의 장부, 법원의 판례, 의사의 진료 차트는 수십 년간 정형화된 데이터로 쌓여 있어 AI가 학습하기 쉽기 때문이다. 전문직의 진입 장벽은 사람에겐 높아도 AI에겐 가뿐히 넘을 수 있는 문턱인 것이다. 더구나 인건비가 비싼 전문직일수록 AI로 대체했을 때 비용 절감 효과가 커서 AI 기업들이 더 눈독을 들이고 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법대 가고, 의대 가야 미래가 보장된다는 말이 유효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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