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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김현수]적자로 34년 버틴 보스턴다이내믹스 생존기

입력 | 2026-02-02 23:15:00

김현수 산업1부장 


올해 글로벌 인공지능(AI) 로봇 열풍의 주인공은 단연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다. 아틀라스를 만든 미 로봇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는 1992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이익을 낸 적이 없다. 최근까지도 자본 잠식에 여러 번 빠졌다. 2021년 현대자동차그룹이 약 11억 달러를 들여 인수한 후, 4년간 누적 손실만 1조20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국이었다면 창업 5년 차에 진즉 ‘좀비 기업’으로 퇴출됐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34년간 기술이 축적될 때까지 인내할 자본은 상상하기 어렵다. 지난달 CES 2026 무대에서 선보인 경이로운 관절 꺾기는 수십 년간 돈과 시간이 빚어낸 기술의 결집체였다. 어떻게 미국에선 이런 딥테크의 ‘비상식적인 생존’이 가능했을까.

대학이 씨 뿌리고, 정부가 장기 고객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마크 레이버트 당시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 ‘레그 랩(Leg Lab)’을 1992년 법인화하며 시작됐다. ‘연구실 스핀오프’ 기업이다. 로봇이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오던 시절, 이들의 출발점은 정부 예산이었다.

단순히 시혜성 창업 지원금을 주는 수준이 아니었다. 미 국방부 산하 고등방위연구계획국(DARPA·다르파)은 첫 고객으로서 까다로운 연구 과제라는 ‘주문서’를 보냈다. ‘군인 대신 험지에 투입될 운반 로봇이 가능할까’와 같은 미래 상상력이 동반된 주문이었다.

다르파는 실패 가능성이 높은 과제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미 딥테크의 산실로 꼽힌다. 인터넷도 음성비서 기술도 다르파가 출발점이었다. 2016년 공개된 백서에서 다르파 관료들은 “만약 지금까지 한 건도 실패한 프로젝트가 없다면, 우리는 충분히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것”이라며 실패율 90%를 용인해 왔다.

다르파 덕에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단기 수익 압박 없이 20년 뒤를 내다보는 기술 축적에 나설 수 있었다. 사족보행 로봇 ‘스팟’의 전신인 ‘빅도그(2005년)’, 두 발로 선 ‘아틀라스 1호기(2013년)’ 모두 연구과제 속에 나왔다. 미 의회도 장기 연구 과제를 두고 호통치지 않았다.

대기업 M&A라는 ‘혁신의 온실’

2010년대 들어 로봇 기술이 빅테크의 투자 리스트에 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시장 자체가 없었지만 대기업들이 미래 기술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3년 스타트업 인수합병(M&A)의 큰손 구글이 5억 달러에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것도 이 무렵이다. ‘자본의 온실’이 생긴 것이다.

2017년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에 매각된 데 이어 2021년 마침내 제조 시너지를 본 현대차그룹에 안착하게 된다. 대학(MIT)이 씨를 뿌리고 정부(다르파)가 물을 줘 상상 속 기술을 손에 잡히게 만든 다음, 글로벌 자본이 온실이 돼 이제 수확(양산)이 눈앞에 온 34년의 대장정이었다.

한국은 어떤가. 대학 연구실 스핀오프 자체가 까다롭고, 정부가 성과 없이 장기 연구과제를 주기 어렵다. 대기업 인수는 하늘의 별 따기다. 한국 스타트업 중 M&A를 통해 자금회수(엑시트)를 하는 비중은 3∼4%에 불과해 결국 상장밖에 퇴로가 없다. 미 스타트업 인수 비중이 90%에 육박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대기업 인수가 어려운 이유는 까다로운 규제 탓이 크다. 대기업이 국내 스타트업을 인수하면 계열사 편입에 따른 각종 규제를 받게 된다. 성과를 못 내면 ‘배임죄’ 우려도 있고, 다시 내다 팔 시장도 작다. 기술을 키울 온실 자체가 부실해 특히 딥테크 창업은 꿈도 꾸기 어려운 셈이다.

이재명 정부는 최근 창업 오디션을 열고 창업사회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창업 붐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세계적 딥테크의 성장을 위해서는 화려한 이벤트보다 실패를 용인하는 인내자본, 이를 가능케 하는 제도적 인프라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현수 산업1부장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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