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31일~2월1일 서울 잠실체육관서 첫 월드투어 피날레 도쿄돔 2회 공연 등 총 20개 도시 31회차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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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이돌이라는 존재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완벽하게 세공된 모습인가 아니면 그 세공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균열을 견디는 태도인가.
4세대 K-팝의 최전선에서 서사를 갱신해 온 걸그룹 ‘르세라핌(LE SSERAFIM)’이 1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첫 월드투어의 대미를 장식하는 ‘르세라핌 투어 ’이지 크레이지 핫‘ 앙코르 인 서울(LE SSERAFIM TOUR ’EASY CRAZY HOT‘ ENCORE IN SEOUL)’을 통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명확했다.
그것은 ‘성장’이라는 납작한 단어로 요약될 수 없는, 고통을 재료 삼아 자기 존재를 증명해내는 자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실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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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3집 ‘이지(EASY)’, 미니 4집 ‘크레이지(CRAZY)’, 미니 5집 ‘핫(HOT)’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이크핫’ 3부작은 그 승화의 기록이다. 과거의 그들이 외부의 시선에 맞서 “내 흉짐도 나의 일부”라며 방어기제로서의 갑옷을 둘렀다면, 서울의 마지막 밤에 선 다섯 멤버는 그 갑옷을 벗고 “내가 나로 살 수 있다면 재가 된대도 좋다”는 긍정의 당당한 태도로 무대에 섰다.
이것은 ‘정직한 신체’의 승리다. 약 11년 전에 몸 담았던 일본 그룹 ‘AKB 48’ 선배들의 등을 바라보던 사쿠라의 눈물, 발레리나의 토슈즈를 벗고 K-팝의 거친 바닥을 택한 카즈하의 발등, 그리고 숱한 오해를 뚫고 리더로 다시 선 김채원의 목소리, 각종 편견에도 주저하지 않는 허윤진의 태도, 더 이상 막내라는 수식에 숨지 않는 홍은채의 자세까지 르세라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적 문장이 된다. 그들은 자신의 고통을 은폐하지 않는다. 대신 그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의 단단함이 가능했음을, 무대 위에서 쏟아내는 땀과 호흡으로 증명한다.
공연 중반 들려준 팬송 ‘펄리즈(Pearlies)’가 그것을 증명한다. 데뷔 초 “세상은 나의 오이스터(Oyster)”라고 외치며 그 안의 진주를 쟁취하겠다던 야심 찬 소녀들은, 이제 고통을 삼키고 견뎌낸 시간 그 자체가 진주였음을 고백한다. 진주는 상처 입은 조개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한 액이 굳어 만들어진 결정체다. 르세라핌에게 있어 팬덤 ‘피어나’와의 연대는, 외부의 상처를 진주로 바꾸는 연금술적 과정과 다름없다.
앞서 양일간 8만명을 모았던 도쿄돔 공연에 이어 이날도 팬들을 열광시킨 ‘크레이지(CRAZY)’와 ‘스파게티(SPAGHETTI)(feat. j-hope of BTS)’를 EDM 버전으로 매시업한 앙코르 구성은 이 연금술의 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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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중앙을 지배한 거대한 삼각형 프레임은 이들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기하학이었다. 밑변이 넓은 안정적인 삼각형이 아니라, 불길 속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는 예리한 정점으로서의 삼각형. 레이저와 화염이 뒤섞인 그 무대 위에서 르세라핌은 불완전한 인간이 서로에게 기대어 완전해지는 순간을 연출했다.
사쿠라는 “피어나와 함께 달려온 1년이 보물 같은 시간이었다”고, 카즈하는 “객석을 채울 수 있을까 불안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피어나와 눈을 마주치면 자연스레 용기가 났다”고 했다.
멤버들은 무엇보다 이번 투어로 많은 성장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허윤진은 “멤버들과 전 세계를 돌며 어려워서 더 값지다는 걸 깨달았다. 시작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가 정말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번 앙코르 콘서트는 단순한 투어의 종료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평가라는 고통을 건너온 자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만드는 거대한 위로의 장(場)이었다. 르세라핌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상처는 지금 곪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영롱한 진주가 돼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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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