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민석 국무총리, 우원식 국회의장이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뉴스1
‘고 이해찬 제36대 국무총리 사회장’이 치러지는 닷새동안 곳곳엔 ‘대한민국 민주주의 거목’ ‘민주주의 반석’의 별세를 애도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1970~80년대 유신-신군부 독재에 맞서 민청학련·민통련·국민운동본부까지 뛴 운동권 1세대 이해찬은 “리더를 돕는 데는 대단한 장기(長技)가 있다”고 자부했다.
고인은 민주화운동의 기획·전략통이었고, 그 운동정치를 민주당과 접목해 집권을 설계하고 성사시켰으며, 마침내 상왕격으로 군림했던 ‘민주당의 거목’이었다. 헌정사에 유일한(아직까진) 실세총리, 책임총리라는 건 분명하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 거목이자 반석이라는 데는, 안타깝지만 동의하기 어렵다(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음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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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6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이 열린 가운데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왼쪽)와 악수하고 있다. 안산=송은석기자 silverstone@donga.com
고인을 편안히 보냄과 동시에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또 배울 건 배워야 한다. 김대중(DJ), 노무현 대선 때 기획본부장으로서 승리를 이끌었고 2011년 문재인 전 대통령을 정계 입문시켰으니, 고인이 2005년 자부했듯 “대선 기획에선 내가 최고”다.
2011년 부산까지 내려가 막걸리 20병을 나눠 마시며 “나도 (대선에) 나가고 싶은데 대중성이 없으니 당신이 정권을 찾아와야 한다”는 말로써 설득했다는 건 유명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기도지사 시절, ‘혜경궁 김씨’ 논란으로 출당 요구가 쏟아질 때 등 고비마다 고인은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보호막이 돼주는 장기를 발휘했다. 이 대통령이 “민주주의 역사의 큰 스승을 잃었다”며 애통해 한 것도 이 때문일 터다.
● 운동권만의 힘으로 민주화 가능했나
1987년 6월 반팔 와이셔츠 등을 입은 시민들이 “호헌철폐, 독재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전두환 정권을 규탄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운동’에서 머리와 잔뼈가 굵은 고인은 자기들만 옳다며 하늘을 쓰고 도리질 했다. 자신들만의 도덕성과 가치를 독설과 독선으로 가르치려 들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듯한 왜곡된 인식으로 절반의 국민과 불화했다(다들 잊은 듯한 과거를 들춰내 죄송하지만…다시 한번 심심한 조의를 표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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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기경께도 “별꼴 다 본다” 독설
2005년 11월 7일 김수환 당시 추기경(왼쪽)과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조우했다. 이 총리가 국회에서 김 추기경에 대해 “정치적인 발언을 하신 것 같은데 의도를 모르겠다”라고 비판한 뒤라 두 사람의 분위기는 어색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여든 셋 추기경의 묵직한 우려에 당시 53세 새파란 총리 이해찬은 국회 답변에서 폭언을 했다. “종교지도자인 추기경이 상당히 정치적인 발언을 한 것 같다”며 인격적 모욕까지 가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유신체제 내내 수배, 감옥생활을 했지만 당시 (우리를) 빨갱이로 몰던 사람들이 요즘 와서 이념,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살면서 별꼴 다 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다.
1974년 유신정권이 이해찬 유인태 등 민청학련 관련자들을 구속하자 구국기도회를 열고, 대통령 박정희를 만나 감형을 요청했던 추기경이었다. 지난날의 은혜를 그런 식으로 갚는 걸 배은망덕이라고 한다. 자신들만 선하고, 수구보수는 악하다고 믿는 인식과 태도가 운동권 세력에선 보통인 듯했다.
심지어 고인은 총리 때인 2004년 10월 18일 밤(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은 용납할 수 있지만 조선·동아일보의 역사에 대한 반역죄는 용서하지 못한다”고 했다. 폭탄주를 마신 채 기자들 앞에서 “조선·동아는 내 손아귀에서 논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이틀 뒤 동아일보는 ‘이 총리에게 묻는다’는 공개질의서를 1면에 냈다. “동아일보 84년 역사에 권력자를 비롯해 그 어느 특정인에게서도 이런 폭언을 들은 적이 없다”며 “동아일보가 ‘이 총리의 손아귀에서 논다’는 것이 무슨 뜻이며 그 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가”를 따졌다. 답은 없었다(그럼에도 지금 나의 애도엔 변함이 없다).
동아일보 2004년 10월 21일자 1면. 오른쪽 상단에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의 해명을 요구하는 공개질의서가 실렸다.
● ‘보수 궤멸’은 거의 성공…‘20년 집권’은?
책임총리가 모든 총리의 로망이지만 인사권까지 거머쥔 실세총리는 이해찬뿐이었다. 제 이름 ‘세대’를 가진 정치인도 이해찬뿐이다(아시겠지만 불수능 날벼락을 맞은 2002학번 ‘이해찬 세대’가 좋은 뜻으로 쓰이진 않는다). 어쩌면 내로남불의 원조도 이해찬이라 할 수 있다. 1980년 과외가 일체 금지됐는데 1998년 10월 국감에서 교육부 장관 이해찬의 대학 1학년 딸이 고교 시절 불법고액과외를 받은 사실이 불거졌던 거다(1989년부터 방학 중 대학생 과외만 허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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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했다. 어떻게 같은 나라에서, 그것도 민주화운동을 했던 인사가, 단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다른 진영 사람들을 적(敵)으로 보는 인식이 가능할 수 있는가. 2018년 민주당이 여당일 때도 당 대표 이해찬은 정조와 20년 집권론을, 나중엔 100년 집권론을 말했다. 국민은 그 오만과 무능을 용서하지 않았다. 2022년 문재인의 민주당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 “야당 역량 없으면 여당 소통 필요 못 느낀다”
2019년 9월 26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 일정을 마친 뒤 성남공항에 입국해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과 대화하며 걷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그때만 해도 나중에 자신이 두번 더 킹메이커가 된다는 생각은 못했을 듯하다. 2010년에 낸 그 책에서 이해찬은 현재 곤경에 빠진 보수정당이 새겨들음직한 발언을 했다. 이쪽(야당)에 역량과 힘이 생겨야 (여당에서) 소통하려는 의지가 생기지, 그렇지 않으면 여당도 소통할 필요조차 못 느낀다는 거다. 또 야당은 욕을 먹더라도 여당과 딜을 해서라도, 문제를 풀어내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악법이 통과된다면 1인 시위라도 하는 결기가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3실(진실·성실·절실)을 강조한 것도 새겨들을 만하다. 정치를 가장 절실하게 해온 정치인이었기에 마침내 ‘보수궤멸’을 이루지 않았나 싶다. 스스로 ‘인덕이 없다’는 데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다면서도 검소와 겸손을 강조할 땐 (고인에겐 죄송하지만) 좀 웃겼다. 그럼에도 공천뇌물과 의원갑질이 판치는 지금, 금배지들 멱살잡고 구하고 싶은 것이 바로 검소와 겸손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순덕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