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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모래와 갯벌이 빚어낸 혁신… 한반도 신석기인의 ‘생존 그릇’[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입력 | 2026-01-26 23:09:00

한반도의 선택, V자형 빗살무늬토기



한반도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토기.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모래사장과 펄이 발달한 서해안 지형에 대응하기 위해 바닥을 V자형으로 뾰족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한국사 교과서를 넘어 대한민국 여권 사증면에 등장하는 ‘빗살무늬토기’. 한국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한반도 신석기 시대 유물이지만, 정작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빗살무늬토기는 유럽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북미 대륙에 이르기까지 지구 절반에 가까운 지역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뾰족한 바닥에 정연한 선무늬를 새긴 형태는 오직 한반도에서만 확인된다.

도대체 왜 한국의 빗살무늬토기는 바닥을 뾰족하게 만들었을까. 또 중국, 일본과는 다르게 유라시아 스타일을 새겨 넣는 무늬로 장식한 이유는 뭘까. 빗살무늬토기는 기후 변화와 지형 격변, 그리고 생존 전략이 응축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이 질문은 더욱 흥미롭다. 8000년 전 격변하던 환경 속에서 한반도의 신석기인들이 내린 선택, 한국만의 디자인을 지닌 빗살무늬토기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자.

한중일 분리와 함께 등장한 토기

우리나라의 빗살무늬토기는 약 8000년 전 처음 등장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한반도의 지형이 이 무렵 완성됐기 때문이다. 빙하기 동안 한국은 중국, 일본과 육지로 이어져 있었다. 약 1만8000년 전 최후빙기극성기(LGM)에는 전 지구 해수면이 지금보다 120∼130m 낮아 수심이 얕은 서해는 바다가 아니라 군데군데 호수가 있는 육지였다.

한중일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은 약 1만5000년 전부터다. 빙하기가 끝나며 해수면이 상승하자 약 1만 년 전 한국은 중국, 일본과 완전히 분리됐다. 과거 육지였던 서해는 얕은 바다와 갯벌로 변했다. 이렇게 급변하던 지형은 8000년 전 무렵 안정되며 지금의 모습에 가까워졌다. 이때 서해는 광활한 갯벌이 돼 패류의 보고가 됐고, 내륙은 참나무숲으로 덮여 가을이면 도토리가 숲을 채웠다. 사람들은 강과 해안에 정착해 풍부한 해산물과 도토리를 이용하며 마을을 꾸렸고, 뾰족한 밑바닥의 빗살무늬토기도 이 무렵 등장했다.

중국 서북 지역에서 출토된 약 6000년 전 채도(彩陶). 한반도의 빗살무늬토기와는 다른 계통의 전통을 보여 준다. 강인욱 교수 제공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 동아시아 지도가 토기의 양식에 따라 세 갈래로 뚜렷이 갈라졌다는 사실이다. 대륙 서쪽 황하 유역에서는 온대 지역 농경사회를 상징하는 화려한 채도(彩陶) 문화권이 이어졌다. 중국의 채도는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 출발해 산둥반도까지 확산됐지만, 지척의 한반도 서해안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바다 건너 일본 열도는 고립된 섬 환경 속에서 독자적인 조몬(繩文·노끈무늬)토기 문화권을 구축했다.

반면 한반도는 북방 유라시아 전역에 퍼져 있던 빗살무늬 양식을 받아들였다. 본래 빗살무늬토기는 추운 한대 지역에서 주로 쓰였는데, 중국과 같은 온대권에 속한 한반도가 이를 채택한 것이다. 이는 한반도가 유라시아 대륙에서 출발해 만주와 러시아 극동으로 이어지는 문화권과 맞닿아 있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서해안 모래가 빚은 생존의 과학

한국의 빗살무늬토기는 그저 유라시아로부터 만주를 거쳐 들어온 것이 아니다. 한반도만의 독특한 특징을 만들어 냈으니, 바로 밑동이 브이(V)자 모양으로 뾰족한 첨저(尖底) 형태가 그것이다.

만주 서쪽 지역에서 제작된 약 8000년 전 빗살무늬토기. 바닥이 납작한 평저형이다.강인욱 교수 제공

사실 한반도 북방의 아무르강, 연해주, 만주 일대 토기들은 대부분 바닥이 납작한 형태다. 바이칼과 서부 시베리아 지역에서 둥근 바닥이 나타나긴 하지만, 한반도 빗살무늬토기처럼 극도로 뾰족하지는 않다. 이른 신석기 시대에 이런 뾰족한 빗살무늬토기를 만든 곳은 오직 서해안 지역뿐이었다. 동해나 남해안 사람들은 예외 없이 납작한 바닥의 토기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뾰족한 토기가 등장한 이유는 한반도 서해안의 독특한 환경에서 찾는 게 타당할 것이다.

한반도 서해안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모래사장과 펄이 발달했다. 사람들은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 모여 살았고, 그러한 서해안과 한강 유역에서 평평한 바닥의 그릇은 쉽게 기울거나 넘어질 수 있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고안된 것이 바로 뾰족한 바닥의 토기였다. 토기 아랫부분을 모래 속에 파묻어 무게중심을 낮추면 지반이 흔들려도 그릇을 단단히 고정할 수 있었다.

뾰족한 토기를 쓰면서 요리의 편리함은 더욱 커졌다. 사람들은 뾰족한 밑을 활용해 열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V자형 뾰족한 바닥은 모닥불이나 야외 노지에 비스듬히 세우거나 돌을 괴어 사용하기에 알맞았고, 불꽃이 닿는 표면적을 넓혀 열전도율을 높였다. 이는 기후 변화로 풍부해진 도토리의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오래 끓이거나 서해안 갯벌에서 채취한 조개류를 삶아 어유(魚油)를 추출하는 데 특히 효과적이었다. 바닷물에서 소금을 만들 때도 밑이 좁아지는 형태가 유리했다. 실제로 서해안 빗살무늬토기에서 제염 흔적이 발견된 사례도 있다.

결국 서해안의 뾰족바닥 토기는 북방 유라시아에서 기원한 빗살무늬 양식을 서해의 환경에 맞게 변용하면서 미적 완성도까지 더한, 일거양득의 ‘생존의 그릇’이었던 셈이다.

한반도에 첫 ‘문화적 통일’ 안겨

사람들은 흔히 한반도 전역에서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동해안과 남해안에서는 전혀 다른 양식의 토기를 썼다. 강원도와 남해안 일대에서는 진흙 띠를 덧붙여 입체감을 살린 융기문(덧무늬)토기와 붉은 산화철을 칠한 한반도식 채도가 사용됐다. 이는 북방 아무르강 유역이나 일본 조몬 문화로 이어지는 빗살무늬토기와는 다른 전통이 이어진 흔적이다.

서해안의 빗살무늬토기가 전국으로 퍼진 것은 약 6000년 전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서해안의 뾰족밑 빗살무늬토기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넘어 동해안과 남해안은 물론 지리산 깊은 산중까지 확산됐다. 화전을 활용한 농경과 제염이 가능한 효율적인 V자형 토기를 쓰던 이들은 내륙 깊숙한 곳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나아가 동해와 남해로 퍼지면서 기존의 평저 토기와 융기문토기는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강원 양양군 오산리 유적은 이런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처음 사람들이 살 때에는 화려한 산화철로 장식한 채문토기와 융기문토기가 사용됐다. 하지만 이후에는 서해안에서 넘어온 뾰족밑 빗살무늬토기가 쓰였다. 농경, 수렵, 어로를 결합한 삶의 방식은 기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했음을 뜻한다.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한반도에서 더 효율적인 생활방식이 자리 잡으면서 인구는 늘고 마을도 증가했다. 약 6000년 전을 기점으로 해안과 내륙 지역에 사람들이 고루 정착했고, 한반도는 빗살무늬토기로 처음 ‘문화적 통일’을 맞이했다.

한반도 역사성 최초의 문화적 통합을 주도한 곳이 한강 유역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 유적은 단순한 집터를 넘어 당시 한반도 중부 지역에 대규모 마을 공동체가 형성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이자 풍부한 수산 자원, 배후의 농경지까지 갖춘 한강 하류는 신석기인들에게 최적의 생존 공간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중심인 수도권은 이미 6000년 전부터 한반도 역사의 주무대로서 지정학적 중요성을 드러냈다.

보편성과 특수성을 함께 담다

빗살무늬토기는 결코 북방 유라시아의 기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 ‘이식된 문명’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광활한 대륙의 문화적 유산인 ‘빗살’이라는 정체성을 계승하면서도 해수면이 오르고 지형이 갈라지던 격변의 한반도에서 새롭게 빚어낸 선택이었다. 중국의 채도나 일본의 조몬토기와 확실하게 선을 긋는 V자형의 빗살무늬토기는 빙하기 이후 한반도 문화가 가진 독특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물이다.

8000년 전 한탄강과 한강 유역에서는 낯선 것을 받아들이되 한반도의 조건에 맞게 다시 설계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그 순간 유라시아적 보편성과 이 땅의 특수성이 공존하는 문화적 문법이 완성됐다. 다른 전통을 배제하지 않고, 이를 기후와 환경에 맞게 새롭게 엮어 내는 한반도의 특징은 21세기 다양성을 바탕으로 꽃피우고 있는 현재의 K컬처의 원형을 보는듯 하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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