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활도 쓰고, 칼도 쓰고, 창도 쓰고” ‘공익 외면해 온 가족 삶’이 의혹 본질 ‘원펜타스-훈장 찬스’ 의혹도 못 거른 부실한 인사-검증 시스템 당장 손봐야
천광암 논설주간
광고 로드중
“칼 쓰는 종족하고 활 쓰는 종족하고 싸워서 칼 쓰는 종족이 이겼다고 해도 모두가 칼만 쓸 수는 없잖아요. 필요하면 활도 쓰고, 칼도 쓰고, 창도 쓰고 하는 거죠.”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할 것인지 질문을 받고 한 말이다. 웬만하면 ‘탕평 인사’를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25일 결국 이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했다. 당초 일요일까지는 여론을 지켜본다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싸늘한 민심에 하루라도 빨리 ‘손절’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 눈높이를 감안하면 지명 철회는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이 후보자는 국회의원 시절이던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 및 임명 강행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여러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이때 이 후보자가 내세운 기준은 두 가지다. 첫째는 ‘상식과 국민 정서’, 둘째가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태도’였다.
광고 로드중
먼저 가장 큰 쟁점이었던 원펜타스 부정 청약 의혹의 경우 이 후보자의 배우자가 청약 당시 장남을 부양가족에 올린 것이 당첨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 당시 장남은 세종시에서 전셋집까지 얻어 직장 생활을 했고, 용산에는 신혼집까지 얻어두고 있었다. 이런 경우라면 장남은 세종이나 용산에 주민등록을 두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도 이 후보자는 “장남이 당시 결혼식은 올렸지만 사실상 파경 상태여서…”, “식사나 세탁을 해결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와 같은 상식 밖의 해명을 했다.
이 후보자 장남의 ‘할아버지 훈장 찬스’도 어처구니가 없다. 이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장남이 2010학년도 연세대 수시 입시에서 사회기여자 전형에 ‘국위선양자 자격’으로 응시해서 경제학과에 입학했다고 밝혔다. 시아버지가 내무장관을 지낸 공로로 청조근정훈장을 받아서 이 전형의 자격을 얻었다는 것인데, 내무장관 업무와 국위 선양이 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우리 헌법 11조는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학교 측이 갖고 있었던 자체 기준에 따른 것이어서 자신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태도로 얼버무릴 일이 아니다.
지명 철회는 이 후보자의 ‘자업자득’인 것이다. 그러나 지명 철회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재명 정부의 허술한 인사 검증 시스템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앞서 기자회견에서 이 후보자의 의혹과 관련해서, “그쪽 진영에서 공천을 무려 5번을 받아서 3번씩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아무런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던 분이잖아요”라고 했다. 이 후보자의 무성한 의혹의 책임을 ‘정치적 배신’ 프레임에 사로잡혀 협치를 외면하는 야당 탓으로 돌린 셈이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와 위장 전출입, 자녀 입시 문제는 인사청문회의 단골 메뉴였다. 조금만 진지하게 검증을 했더라면 부정 청약과 ‘할아버지 훈장 찬스’ 의혹은 충분히 걸러낼 수 있었던 사안들이다. 어떻게 세종시에서 번듯한 직장의 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결혼식까지 올린 성인이 전세 사는 부모의 피부양자로 올라 있는 것을 그냥 보아 넘긴다는 말인가.
광고 로드중
이재명 정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은 작년 7월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했을 때도 거센 부실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현역 의원 불패 신화’가 깨지면서 큰 후폭풍이 일었던 사안이다. 그런데도 인사 검증 시스템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탕평 인사는 중요하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도덕성과 자질이 떨어지는 후보자에게까지 박수를 보낼 만큼 국민의 눈높이가 녹록하지는 않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