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대제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 정전에서 2025년 종묘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종묘대제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올리는 제례의식이다.
순종 즉위 뒤 종묘사향대제(宗廟四享大祭)에 쓰인 축문에서 고종은 자신을 ‘태황제’로 칭했다. 하지만 일제강점 뒤엔 태황제라는 칭호 없이 자신을 그저 ‘효자’라고만 했다. 대한제국 황실이 이왕가(李王家)로 격하되면서 축식(祝式·제향 때 신이나 조상에게 올리는 축문의 형식)이 바뀐 것이다.
이욱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최근 발간한 ‘일제강점기 종묘 연구’(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에서 일제강점기 종묘가 식민 권력 아래서 어떻게 바뀌고 존속했는지를 조명했다. 책에 따르면 1910년 국권을 강탈당하며 대한제국 황실은 일본 천황제 체제 내의 왕공족(王公族)이 됐다. 순종은 ‘창덕궁 이왕’, 고종은 ‘덕수궁 이태왕’이 됐고, 조선의 유교적 예법은 천황(일본 왕)제하의 식민지 행정 기구인 ‘이왕직(李王職·이왕가의 사무를 담당하는 관제)’의 사무규정으로 편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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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밖에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이왕직의 자료를 바탕으로 종묘 소장 물품, 제기, 제물의 공급과 분배 등을 상세히 좇는다. 1932년경 제관의 수는 조선시대 8분의 1 수준인 16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관원에서 차출했던 제관 역할은 이왕직 또는 종묘 직원이 했다. 이 역시 제향이 철저히 이왕가의 행사로 간주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종묘 예식은 중국 고대 유교 예식에 근거를 뒀는데, 황제도 아닌 이왕가에 적합한 것인가 하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하지만 논자들은 이왕가의 종사(宗祀)를 보장한 일본 천황의 조서를 통해 기존 제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중국 예식은 일본의 것과 다르므로 천황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다’ ‘신앙의 자유가 있다’ 등의 의견을 근거로 이왕가는 기존 천자의 의식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다.
이 교수는 “왕조의 신전이며, 국가 사당이었던 종묘의 역사를 이왕가의 역사로 환원하는 것은 종묘에 깃든 공적인 성격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