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작은 아라리[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5〉

입력 | 2026-01-16 23:06:00


깜박했는데

감자 삶았어

네가 잘 때

성한 놈들 골라

껍질 깎고 소금 뿌렸지

벼랑 밭으로

나 보러 오기 전에

친정 엄마 생각에

또 울기 전에

볼가심하렴


―전윤호(1964∼)




이 시는 작고 따뜻한 전갈 같다. 힘들 때 골방에 들어가 몰래 읽고 싶은 편지 같은 시다. 여기에 큰 이야기는 없다. 대단한 미사여구나 듣기 좋은 말도 없다. 아마도 여성인 화자가 다른 여성에게, 대수롭지 않은 듯 건네는 말이 시의 전부다. “깜박했는데/ 감자 삶았어” 하는 말! 전윤호 시인은 ‘정선’이란 시집을 온통 강원 정선의 이야기로만 꾸렸으니, 이 시도 정선 어디쯤 “벼랑 밭”에서 일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일 것이다.

화자는 잠깐 오수에 빠진 여성에게 밭으로 나오기 전 감자를 먹고 나오라고 한다. “친정 엄마 생각에/ 또 울기 전에/ 볼가심하렴” 하는 말이 곰살스러운 말투도 아닌데 퍽 다정하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데가 있다. 잠들었던 그이는 친정 엄마 생각에 자주 우는 사람일 테고 어쩌면 친정은 정선에서 멀리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사는 일은 고되지만 그이를 안쓰럽게 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짐작되어서일까.

마지막 행의 “볼가심”이란 말이 시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 ‘아주 적은 양의 음식으로 시장기나 궁금함을 면하는 일’을 뜻하는 말인데 생경하니 아름답다. 어릴 적 밥 먹은 뒤 상을 물리면 “입가심이나 하자”며 배나 귤을 내놓던 고모의 말투가 떠오른다. 미술 비평가이자 작가인 존 버거는 어느 책에서 “음식은 멀리서 온 전갈”이라 했는데, 감자를 한 소쿠리 쪄서 정선에서 온 전갈인 듯 귀하게 먹고 싶은 날이다. 먼 곳에서부터 도착한 누군가의 마음을 섬기듯 꼭꼭 씹어 먹을 것이다.



박연준 시인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