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감포·구룡포·호미곶 지질기행
“겨울에는 경북 동해안 ‘바다 정원’에 와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무렵 만난 경상북도 분들이 바다 정원 얘기를 꺼냈다. 지난해 4월 경주 포항 영덕 울진 일원의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에서부터 포항 호미곶까지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는 1박 2일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 바다에서 생각하는 지질의 시간
금강산도 식후경. 경주역에서 차를 타고 경주 건천읍 ‘모량칼국수’에 가서 칼국수를 먹었다. 푹 우려낸 구수한 육수가 속을 따뜻하게 데웠다. 직접 삶은 우리 콩으로 새벽에 만든다는 촌두부도 담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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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의 지질명소 ‘경주양남주상절리군’ 중 부채꼴 주상절리.
전망대 앞 파도소리길(총연장 1.7km)에는 겨울바람에도 보라색 해국이 맑고 꿋꿋하게 피었다. 푸른 바다에서는 짭쪼름한 냄새가 났다. 이 일대에서는 미역과 다시마 등 해조류 서식지가 되는 육지 쪽 수중 바위를 ‘짬’이라고 부른다. 짬을 바라보며 멍을 때려 보았다. 뺨 위로 스치는 겨울 바다의 기운이 부드러웠다.
북쪽으로 15분을 달렸더니 이견대(利見臺)가 나왔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바다에 묻히길 원했던 신라 문무왕의 염원을 담은 문무왕릉(대왕암)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정자다. 이견대 바로 뒤에는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이 지어져 올해 개관을 앞두고 있다. 신라의 해양문화유산을 전시, 교육할 이곳이 바다 여행의 새로운 역사를 열면 좋겠다.
● 등대와 항구를 따라서
10분을 더 달리니 감포였다. 감포는 경북의 일상을 품는 항구다. 지난해 경주에 왔을 때 감포 ‘남해식당’에서 가자미구이와 조림을 푸짐하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났다. 이번엔 1961년부터 4대에 걸쳐 50년 넘게 국내산 생멸치로 멸치액젓을 생산하는 ‘김명수 젓갈’에 들렀다. ‘갈치 뻑뻑이 액젓’으로 유명한 김명수 젓갈의 김헌목 대표는 지역사회 기부에 앞장서 지난해 경북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감포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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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명소 중 하나인 경주시 감포읍 송대말등대.
다시 30분쯤 북상하니 포항 구룡포였다. 구룡포 해수욕장 갈매기들이 화사한 겨울 햇살을 받아 평화로워 보였다. 저기 아장아장 걷는 어린 갈매기는 엄마로부터 은빛 날개짓을 배우는 걸까. 갈매기는 이별 노래에 자주 등장하지만 실은 의리가 넘치는 새라고 한다. 동료가 다치면 달아나지 않고 곁을 지켜 죽음을 뛰어넘는 우정과 사랑을 보여준다. 백사장 모래가 하도 곱기에 구부려 앉아 손가락으로 커다란 하트를 그려 보았다. 이내 파도가 와서 지울지라도 구룡포에 마음을 남겨 두고 싶었다.
저녁에는 과메기 문화관과 용왕당, 일본인 가옥 거리를 둘러보고 커다란 홍게를 먹었다. 다음 날 동트기 전 숙소를 나서면서 마을 어르신들이 오징어 말리는 모습을 보았다. 해풍에 말린 오징어는 반건조 특유의 촉촉하고 쫄깃한 식감이 겨울철 별미로 꼽힌다.
● 호미곶이 준 새해 희망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상생의 손’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붉은 해가 수평선 위로 아기 얼굴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고 누군가는 상생의 손이 해를 구슬처럼 잡은 것처럼 구도를 잡아 사진을 찍었다. 동행자가 말했다. “두 팔 벌려 새해의 기운을 받아 봅시다.” 두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니 정말로 해의 우렁찬 기운이 온몸을 적시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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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해녀들.
경주역으로 가는 길에는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1코스를 둘러봤다. 해병대 상륙 훈련장으로 사용되는 백사장을 걷다가 시인 이육사 조형물을 만났다. 시인은 휴양차 포항에 머물던 1936년 청림동 청포도 농장을 바라보며 ‘청포도’ 시를 구상했다고 한다. 인근 ‘촌놈물회’의 시원한 물회 한 그릇이 여행을 청량하게 마무리해 줬다.
지질의 거대한 시간 위에 삶과 문학이 겹겹이 포개졌다. 감포에서 구룡포를 지나 호미곶에 이르는 바다는 크고 넓고 따뜻했다. 살다가 힘들면 상생의 손 끝에 걸리던 뜨거운 해의 기운과 미역 바위의 평화를 떠올리겠다.
글·사진 경주·포항=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